18일 개봉하는 '로드 무비'는 우리 영화계는 물론 두 배우에게도 꽤 의미있다. 데뷔 7년 정찬과 2년차 황정민은 영화 속의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했으며, 처지도 퍽 다르다. 연극에 오래 몸담았던 황정민은 영화 데뷔가 늦기는 했지만, 지난해 이후 실패 없이 달려왔고, 드라마 데뷔 후 꽤 잘 나가던 정 찬은 대마초 흡입사건 등 적잖은 시련을 겪었다. 성격도 역할도 다른 두 70년 생이 만났다.황정민 "누가 우리 영화 보고 동성애자 이해를 위한 단기 교습서 같다고 하더라."
정 찬 "사실 '로드무비'는 소재가 동성애일 뿐, 그리 부담스러운 주제는 아니다. 그냥 사랑 얘기로 봐주었으면 좋을 텐데."
황 "우리 처음 만났을때, 영화에 대한 생각이 많이 비슷해 쉽게 친해졌던 것 같아. 물론 난 TV를 잘 보지 않아 찬이가 나온 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난 주로 시간이 나면 벽을 뜯거나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편이야."
정 "나도 TV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 같은 다큐멘터리 채널 밖에 안보게 된다. 물론 내가 출연한 프로그램은 모니터 차원에서 보지만, 가끔은 그것조차 빼먹을 때가 있어."
황 "내가 동성애자들의 대변인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 갖고 있던 편협한 시선을 극복할 수 있어 '로드 무비'가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 하지만 TV에서 귀공자 같은 이미지를 보여온 찬이에게는 꽤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
정 "지난해 '순자'가 끝난 후 내 이미지에 질식해버릴 것만 같았어. '로드무비'의 석원은 내가 갖고 있는 최종판이라고 생각했어. 내 이미지를 완전히 쇠락시킴으로써 앞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지."
황 "네가 영화 마지막에 트럭타고 가는 장면 정말 죽음이었어. 석원이 뭔가 앞으로는 잘 살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을 전달해 주는 것 같더라. 그래서 나는 '로드 무비'가 해피 엔드라고 생각한다."
정 "아들이 '아버지 맞죠'라는 말을 던지고 돌아서 갈 때 네가 보인 무너지는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어. 그 장면을 보면서 네 연기가 정말 좋구나 생각했어. 난 베드신이 이번에 처음이었는데, 찍고 나니 허탈하더라. 마치 순결을 빼앗긴 것 같은."
황 "남들은 우리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구경 잘했을 것이라고 하던데."
정 "처음엔 그랬지. 서울역 장면 좀 갑갑했나. 그리고 처음 강원도 갔을 땐 정말 살 것 같았지. 근데…"
정 "그래, 넌 얼굴에 열꽃이 피고, 난 병원에 갔더니 대상포진이라 하더라. 의사가 '환경이 안 좋은 데서 생활 하냐'고 물을 정도였으니까."
황 "그렇게 힘든 데 넌 뭘로 버텼냐."
정 "글쎄. 평가 받는 게 두려워, '끙'하면서 다시 힘을 내게 되더라."
황 "난 딴 일 할 것이 없으니깐. 하하. 중3 때 윤복희 주연의 '피터 팬'을 단체 관람했는데. 정말 멋지더라. 그냥 무대 위를 휘휘 나는 모습이 말야. 그 때부터 난 배우가 꿈이었다."
정 "어, 나도 그거 봤는데. 난 말야 뭔가 좀 색다르게 살고 싶었어. 이건 그냥 초등학교부터 들었던 생각인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CF 모델 잠깐 하다가 군대 다녀와 군인정신으로 무장하고 시내를 헤매고 다녔어. 배우 시켜달라고. 7년의 연기자 생활은 순발력, 대사 암기 같은 걸 배우는데 도움이 됐지만 그래도 내 꿈은 영화였어. 내가 좋아하는 역을 맡기 위해 좀더 자유분방하게 생겼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도 하고. 난 게리 올드먼을 좋아하거든."
황 "어, 나도. 하비 키이텔도 참 좋더라. 사람 냄새 나는 연기, 연기하지 않는 느낌의 연기 말이야. 난 빨리 늙어서 본능적으로 나오는 연기를 하고 싶어. 아직은 캐릭터가 완벽히 소화되지 않으면 연기가 잘 안 나오거든. 배우로서 단점이지."
정 "전도연처럼 본능에 맡기는 방식도 좋은 거지. 참, 돈 좀 많이 벌였냐."
황 "연극할 때랑 비교하면 열 배, 그것도 훨씬 넘겠다. 전세 1,500만원짜리에서 3,000만원짜리로 옮겼다. 언젠간 그렇게 되겠지만, 아직은 돈에 연연해 하고 싶진 않아."
정 "당연하지. 우리 나이엔. 근데 난 스킨스쿠버 다이빙 강사 자격증 따러 필리핀에 또 갈거다. 영화 개봉준비 때문에 시험을 못 봤거든. 스노 보드, 스카이 다이빙 강사 자격증, 이런 것들은 노후 대비용이야. 그리고 나서 마음껏 연기만 할란다."
황 "난 용접자격증 있는데. 군대서 그 놈 딴다고 참 편하게 지냈는데. 그거 쓸 일 있을까"
/박은주기자 jupe@hk.co.kr
● 정 찬
1970년 서울 출생
서라벌 신학대 연영과 중퇴
MBC 드라마 'TV 시티'(95년)로 데뷔. 드라마 '내 안의 천사'(KBS) '퀸' '순자'(SBS) 등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 '로드 무비'(2002)
● 황정민
1970년 마산 출생
서울예전 연극과 졸업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연극 '개똥이' '의형제' '장보고의 꿈' 등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YMCA 야구단' '로드 무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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