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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석양이 물든 초가집마을 "나그네양반 한잔 받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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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석양이 물든 초가집마을 "나그네양반 한잔 받게나"

입력
2002.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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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깃든 초가지붕, 가을빛 산자락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 남도땅 순천에는 찬바람에 허해지는 마음을 달래줄 따뜻하고 정갈한 서정이 있다. 16일부터 내로라할 남도 먹거리가 모두 모인 '남도음식문화 대축제'도 열린다. 잔치를 즐기며 한나절이면 같이 둘러볼 수 있는 순천의 명소를 소개한다.▶낙안읍성

낙안읍성은 '살아있는 민속마을'이다. 인위적으로 옛 모양새만 지키고 있는 마을이 아니라 108가구의 279명의 주민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다.

산자락이 아닌 넓은 평야에 1,410m의 길다란 성곽이 둘러쳐진 게 이색적이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큰 길을 중심으로 왼쪽은 나즈막한 돌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 오른쪽은 높은 담에 둘러싸인 기와집이다. 텁텁한 갈색 지붕, 흙부스러기가 그대로 묻어나는 돌담 모양새가 옛 시골마을 그대로다. 주먹만한 하늘수박이 송글송글 맺힌 돌담 너머로 아이들이 강아지와 뛰어 놀고, 자전거를 탄다. 시뻘건 쇠를 연신 담금질해댔을 대장간이 지금도 칼과 호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고려후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성으로 세워진 것을 조선 태조 6년에 대대적인 보수를 거쳤고, 약 300년 뒤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하면서 오늘의 석성(石城)으로 만들었다. 성곽을 따라 주변을 돌아보면 주민들의 사는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어 마치 파수병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영상미가 돋보였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남해고속도로 승주IC에서 빠져 선암사 방향으로 자동차로 20분가량. 10분거리 벌교읍에 모텔, 민박, 여관 등이 많다. 낙안읍성 관리사무소 (061)749-3347.

▶선암사

저녁공양을 드리는 소리가 멀찌감치서 들려온다. 마치 훈련병 기합소리처럼 우렁차고 씩씩하다.

신라 경문왕 1년 도선국사가 창립한 1,500여년의 고찰 선암사. 태고종의 본찰로 모양새는 고색창연하지만 기풍은 자유롭고 활기차다. 절 앞에 선녀들이 목욕을 하고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모양의 다리 승선교가 있다. 아취 모양의 교각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강선루가 눈에 들어온다. 단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본찰 왼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높이 17m, 넓이 2m의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을 볼 수 있다.

사하촌 괴목마을에서 절까지 이르는 1.5㎞의 길은 이팝나무, 말채나무, 서어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절묘하게 뒤틀린 모양새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자동차로 휙 지나치기는 아까운 길. 조계산도립공원의 남쪽으로,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857번 지방도로를 타고 6㎞정도 거리에 있다. 낙안읍성에서는 지방도 857번으로 20분 정도. 절 내에서 숙박을 할 수도 있다. 선암사 종무소 (061)754-5247.

▶송광사

조계산 서쪽 기슭에 있다. 조계종을 대표하는 사찰로 선암사와는 달리 엄숙하고 조용하다. 승보사찰로 양산의 통도사(불보), 합천 해인사(법보)와 더불어 우리나라 3보 사찰 중 하나로 꼽히는 큰 절이다. 신라 말 혜린선사가 길상사로 창건한 후 고려 명종 27년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사를 이곳으로 옮겨와 대찰의 명맥이 이어졌다.

낙안읍성에서 송광사에 이르는 857번 도로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멋진 드라이브코스다. 게다가 절로 들어가는 숲길이나 조계산으로 올라가는 등산코스에는 이제 본격적으로 붉은 기운이 돌고 있다. 서울서 단풍이 질 무렵인 10월 말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대찰을 품고 있는 조계산 도립공원은 평탄한 산세로 가족산행에도 무리가 없다. 송광사에서 장군봉, 향로암터를 지나 선암사에 이르는 10㎞의 길을 비롯해 두 절을 둘러볼 수 있는 3, 4개의 등산로가 있다. 송광사 종무소 (061)755-0107.

/순천=양은경기자 key@ hk. co. kr

●오늘부터 "남도음식문화잔치" 나주곰탕등 전통음식 400종 선봬

남도는 식도락의 땅이다. 미생물이 풍부한 서남해안 갯벌에서 나는 해산물은 유난히 쫄깃하고 감칠맛이 난다. 붉은 황토흙에서 자란 곡식과 과일은 당도가 높다. 부드럽고 촉촉한 해풍과 충분한 일조량,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 모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한다. 남도 아낙네의 섬세한 손길과 후한 인심이 곁들여져 보기만 해도 흐뭇한 상차림이 된다.

여기에 '잔치'라는 타이틀이 붙어 한결 풍성한 먹거리의 향연 '남도 음식문화큰잔치'(16∼20일. 낙안읍성민속마을)이 열린다. 도내 22개 시·군의 전통음식 400여종에 50여가지 전통주가 선보인다. 소문난 맛집 주인들의 솜씨로 만든 나주곰탕, 곡성 은어회, 여수 굴구이, 순천 짱뚱어탕 등 각 시·군 전통음식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행사장만 한바퀴 돌아도 '남도 별미기행'이 되는 셈. 조미료, 인스턴트 음식에 무뎌진 미각을 단련하기에 손색이 없다. 각 메뉴별로 5,000∼1만 2,000원의 시가로 판매한다.

축제의 꽃인 음식을 주제로 한 행사라 사람이 많이 몰린다. 점심시간인 오전 11시∼오후 2시까지는 식사하기가 버거울 정도. 장떡, 더덕장아찌 등 35종의 송광사 사찰음식과 해물솥밥, 호박케익 등 쌀음식, 돌상 등 잔치음식도 전시된다.

축제 기간 동안 '남도문화제'도 열린다. 도립국악단특별공연, 마당극 놀부전, 통기타와 포크송 공연 등이 있다.

또한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일원에서 열리는 김치축제 행사장과 연계하는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전라남도 관광진흥과 (062)607-4617. www. namdofood. or. kr

●선암사 지허 주지/"녹차를 우리것으로 착각 안타까워 직접 가꾼 전통차 쌉싸름하고 고소"

쌉싸름하면서도 숭늉처럼 진하고 고소한 맛이 혀끝에 감돈다. 풋내 대신 잘 익은 풀향기가 가득히 전해진다. '진짜' 우리차를 처음 맛보는 이에게는 가히 미감(味感)의 충격이다. 우거진 잡초로 둘러싸인, 선암사 뒷편 5,000여평의 차밭이 이 맛의 본산이다.

"우리 절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차맛도 그대롭니다."

선암사 주지 지허스님(사진)은 이렇게 산중다담(山中茶談)의 운을 뗀다. 이 차는 신라 말 도선국사때부터 16대째 이어온 것. 만들기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우리차의 맛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줄기의 3, 4배까지 뻗어 땅속의 담백한 수분과 무기질을 빨아들이지요. 농약과 비료 대신 잡초가 찻잎을 보호합니다. "이 찻잎을 열 번 이상 '덖음'(뜨거운 솥에서 볶는 것)을 한다. 달면서 쓰고, 떫으면서도 고소한 데다 신맛까지 더해 오미(五味)를 낸다. 사계절 모두 만들 수 있으며 그 맛이 제각각이다.

그는 "녹차를 우리차로 착각하고 널리 권장하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거듭 말한다. 녹차의 원료는 일본 '야부기다'. 옆으로 가지가 널리 퍼져 생산성이 높지만 벌레가 많이 꼬인다. 또 우리 기후에서는 풋내가 난다. 다도(茶道)도 복잡하기만 하다. "찻잔을 어떻게 쥐고, 무릎을 어떻게 꿇고 하는 번거로운 격식은 일본식 무사도의 변형입니다. 우리식 다도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저 누워서 마시지만 않으면 됩니다."

선암사 전통차는 비싸고 귀하다. 지허스님이 직접 만든 금화산이차는 80g에 무려 15만원. 스님은 "생산량이 야부기다에 비하면 50분의 1도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지극한 애호가들이 있다. 초봄 햇차가 나올 때, 그리고 11월 차꽃이 필 때 등 1년에 3∼4번 모이는 회원 100여명의 '자생차보존회' (061-754-5636, 011-320-0201)가 바로 그것. 임권택 감독, 작가 한승원, 홍익대 미대 안상수 교수 등이 주 멤버다.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다.

스님의 바람은 따스한 남도땅에서 이 차를 널리 심었으면 하는 것이다. "섬세한 맛과 향에서 '일찍 가줬으면' 혹은 '오래 머물렀으면'하는, 손님을 향한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자연 대화도 한풀 걸러집니다. 요즘은 너도나도 똑 같은 녹차와 커피를 내놓으니 눈치없이 몇 시간씩 떠들다 가는 거지요. 전통차를 통해 맑고 순수한 정신세계를 가졌으면 합니다."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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