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새는 우리의 조상입니다. 그들의 쉼터가 간척사업으로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달려왔지요." 이달 2일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5명이 태평양을 건너 전북 부안, 군산의 새만금 갯벌을 찾은 사연이었다. 이들 뿐 아니라 최근 인디언, 정당 대표, 환경운동가, 변호사 등 외국인들이 잇따라 방문하는 등 새만금은 이제 환경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마오리 조상의 숨결이 어린 곳
뉴질랜드 원주민에게 도요새는 매우 특별한 존재이다. 마오리족은 특히 '큰뒷부리도요' '붉은가슴도요' '꼬까도요' 등 3종류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숭배한다. 뉴질랜드 북쪽의 도요새들은 3, 4월 시베리아 등 북반구로 떠나는 데 이 '머나먼 여행'을 마오리족은 '정신적 고향으로의 회귀'라고 부른다. 그래서 도요새가 거치는 한국의 새만금 갯벌은 '신성한 길'이자 '소중한 쉼터'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
"새만금에서 '큰뒷부리도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감격스러웠다"는 타키리랑기 스미스(Takirirangi Smith·31)는 "그러나 조상의 성스러운 쉼터가 파괴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부족들에게 시급히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만금 간척사업에 이미 1조원 이상이 투입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오히려 그 돈을 대기 환경 개선에 투자했다면 한국의 하늘은 이처럼 혼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방한 일주일 동안 마오리족들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등에서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서명운동도 벌였다. "자연, 하늘, 지구는 불가침의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이 그것을 깨뜨리다니요." 낯선 한국인에게 자신들의 '토템신앙'까지 설파한 마오리족들은 도요 나무조각을 만들어 갯벌에 심은 뒤 '조상'들이 훨훨 날던 하늘길을 통해 되돌아갔다.
▶잇따른 이방인의 갯벌사랑
지난달 말에는 쓰러져가는 자연 앞에서 극심한 상실감과 영혼의 상처까지 입었다는 캐나다 인디언 8명이 새만금의 주민들을 찾아나서기도 했다.
녹색당과 환경단체 등 내로라하는 '환경운동가'들의 '한국 갯벌 사랑'도 만만치 않다. 5월 새만금을 찾은 호주 녹색당 대표 밥 브라운(58) 상원의원은 "토사채취를 위해 국립공원까지 파괴하면서 쌓아가는 어마어마한 방조제에 놀랐고 날아오르며 장관을 이루는 새떼에 또 한번 놀랐다"고 말해 화제를 낳았다. 브라운 의원은 김명자(金明子) 환경부장관을 찾아가 "호주 국민과 의회에 새만금 간척의 부당함을 알리겠다"며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전달했다.
세계 3대 환경단체에 꼽히는 '지구의 벗' 리카르도 나바로 의장은 6월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나홀로 시위'까지 벌인 열렬한 새만금 팬. 나바로 의장은 "새만금 갯벌은 결코 한국만의 것이 아닌 전 세계의 소중한 자연유산"이라며 "인간이 함부로 해칠 권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바로 의장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바로 새만금 사업 재강행 결정을 내린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노르웨이 언론 등에 지속적으로 알리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환경운동연합 박경애(朴京愛) 간사는 "독일 환경청 공무원, 일본 차세대 리더그룹, 미국 변호사 등 최근 새만금 갯벌을 방문했거나 요청하는 외국인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가 눈흘기는 간척사업
남북 35㎞, 동서 30㎞에 달하는 새만금 갯벌은 풍부한 영양분과 다양한 생태계를 갖추고 있어 유럽 북해연안과 브라질 아마존강 하구와 함께 세계 3대 갯벌에 꼽힌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간척사업이 완료되면 대부분 사라져 버릴 운명에 처해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지난달 남아공 세계정상회의에 참석한 4만여명의 NGO(비정부기구)들이 '최근 10년간 환경파괴 101가지 사례' 가운데 '특별의제'로 선정하는 등 이제는 전 세계 환경운동의 표적이 되고있다.
한편 정부가 농지확보를 위해 1991년 착공한 새만금 간척사업은 현재 방조제 공사가 83% 공정률을 보이고 있으며 2011년 완공할 계획이다. 그러나 갯벌 파괴 뿐 아니라 쌀 과잉 사태가 이어지고 사업비가 대폭 증가하는 등의 이유로 학계·시민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강 훈기자hoony@hk.co.kr
■새만금은 지금 철새세상/도요·물떼새등 20여만마리 잠시 기착
새만금이 '새 세상'이 됐다.
세계적 희귀 조류인 도요새·물떼새 30여종 20여만 마리가 한꺼번에 전북 새만금 갯벌 일대에 찾아들었다. 이들은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등 따뜻한 나라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시베리아, 알래스카 등에서 막 날아온 '나그네'들이다. 통상 봄·가을 두차례 15∼20일간 머물렀다 떠나는 이들은 올해는 특히 개체수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새만금 갯벌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1만㎞의 남은 대장정을 위해 영양 보충과 휴식을 취하는 장소이기 때문. 먹이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면 태평양을 건너는 도중 힘이 빠져 죽기도 한다. 따라서 먹잇감이 풍부한 새만금 갯벌은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마지막 휴게소'인 셈. 전주환경운동연합 주용기(朱鏞錤·36) 정책실장은 "무리 중에는 갓 부화한 참새보다 작은 어린 새들도 많다"며 "살이 통통히 올라 남쪽을 향해 힘차게 날개를 펼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특히 도요새, 청둥오리 등이 즐겨 찾는 곳은 군산 옥구염전 주변이다. 갯벌과 염전을 종종걸음치는 도요 무리, 억새와 노을을 배경으로 한 가창오리의 군무 등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옥구염전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내년부터 폐쇄될 예정이어서 자연의 선물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고 환경단체들은 안타까워했다. 이번에 찾아온 도요·물떼새 등은 최근 기온이 뚝 떨어지자 하나둘씩 '대장정'에 오르고 있으며 20일께 모두 떠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립환경연구원은 최근 10년간의 철새 이동경로를 추적한 결과 새만금이 서해안 갯벌 가운데 최대의 '철새 중간기착지'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봄철에는 6만∼24만 마리가, 가을철에는 5만∼14만 마리가 바로 새만금 갯벌인 만경강·동진강 하구에 내려앉는다는 것. 또 세계적으로 1,000여마리에 불과한 청다리도요사촌과 6,000여마리만 살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넓적부리도요도 각각 60∼150마리, 50∼200마리씩 관찰됐다고 연구원측은 덧붙였다.
/강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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