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쿵! 대포 소리가 들린다. 포병들이 훈련을 하는가 보다. 옆에서 걷고 있던 아이가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아빠의 다리를 부둥켜 안는다. '그래 여기는 전방이야.' 강원 철원 땅은 관광 측면에서 보면 안쓰럽다. 분단이 아니었다면 최고의 내륙 관광지가 되었을 곳이다. '비탈' 강원도가 아니다. 산과 더불어 드넓은 철원평야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평야를 가로지르는 시퍼런 물길, 한탄강이 있다. 휴전선과 가깝다는 이유로 군청 소재지까지 갈말읍(신철원)으로 내몰렸고, 많은 명소는 비무장지대 안에 갇혔다. 이제는 안보관광지 정도로만 인식될 뿐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짧은 일정으로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기에는 철원만한 데가 없다.철원 여행의 중심은 물론 한탄강이다. 북녘 땅 강원 평강군에서 발원한 한탄강은 김화, 철원, 포천을 거치면서 136㎞를 달려 연천에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1960∼70년대 피서지로 인기를 끌다가 오염이 심해지면서 오랫동안 외면을 받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 색깔을 거의 찾았다.
한탄강은 한반도의 하천 중에서 가장 독특한 모습을 지녔다. 계곡을 지나거나, 평지를 지나거나 물은 바위를 비집고 들어간다. 협곡이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도 물길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땅을 파고 흐르는 물은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직접 물을 보고서야 '어? 강이네'라고 인식한다. 기이하면서 아름답다.
한탄강 중에서도 고석정, 직탕폭포, 순담계곡이 이어지는 곳이 여행의 핵심이다. 고석정은 철원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장소다. 강물의 한쪽으로 20여m의 절묘한 바위가 우뚝 서있다. 말 그대로 '높은 바위(高石)'다. 옛날에는 바위 위에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밑으로 흐르는 물은 바위를 감싸고 돌며 소용돌이친다.
고석정은 조선의 의적 임꺽정의 활동무대로 잘 알려져 있다. 원래 이름은 임거정(林巨正)이다. 토벌꾼이 오면 꺽지(민물고기의 일종)로 변해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려 '꺽정'이라고 이름이 새로 붙었다고 한다. 인근에 임꺽정의 의적단이 만들었다는 산성 등 그의 자취가 많다. 3,000원을 내면 작은 유람선을 탈 수 있다. 배를 타면 임꺽정이 오줌을 눠 깊게 패였다는 바위를 비롯해 한탄강 양쪽으로 늘어선 높은 바위 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 요즘 절벽에 붙은 나무에 붉은 단풍이 피기 시작했다.
고석정의 상류 약 2㎞ 지점에 기이하게 생긴 폭포가 있다. 직탕폭포다. '한국의 나이아가라'로 불린다. 물론 규모는 상대가 되지 않지만 생성의 원리와 모양이 닮았다. 협곡을 훑고 지나가던 물이 수직으로 떨어진다. 수량이 많을 때에는 물보라가 인다. 파란 물과 하얀 물보라가 연출하는 모습이 일품이다. 해가 뉘엿뉘엿해지면 그 빛을 받고 무지개를 만든다.
고석정 하류 약 3㎞ 지점의 순담계곡에 들러야 한다. 조선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관주가 이 곳에서 병든 몸을 요양했다. 맑은 물이 기이한 바위를 끼고 돈다. 한여름에는 물놀이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지만 가을엔 한가롭게 강변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요즘 한탄강이 새삼 부각되는 이유는 댐논란 때문이다. 연천, 전곡 지역의 반복되는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한탄강의 수량을 조절하는 댐을 건설할 계획이다. 장소는 연천읍 근처이다. 댐이 건설되면 한탄강의 절경이 대부분 물에 잠긴다. 철원의 철새도래지까지 파괴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득과 실을 따져 결론을 내겠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눈으로 봐둬야 한다. 없어진 강물을 찾으며 '한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철원=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여행가이드
가는 길/의정부-포천을 거치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 43번 국도다. 가구단지가 있는 소흘읍부터 포천읍까지는 평일에도 정체가 심하지만 포천읍을 지나면 제 속도를 낼 수 있다. 갈말(신철원)을 지나 약 3㎞ 북상한 뒤, 문혜리에서 463번 지방도로(좌회전)로 접어들어 4㎞ 정도 달리면 고석정에 닿는다. 서울 상봉터미널이나 수유리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신철원과 동송행 시외버스가 수시로 출발한다. 신철원이나 동송, 또는 운천에서 고석정행 군내버스를 타면 된다. 신철원 시외버스터미널 (033)452-2551, 동송 시외버스터미널 (033)455-2339.
쉴 곳/인근 경기 포천군의 산정호수에 있는 한화리조트(031-534-5500)가 이 지역에서는 가장 번듯한 숙소이다. 노천탕을 구비한 온천을 갖춰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도 제격이다. 고석정과 인근 동송지역엔 규모가 큰 여관이 많다. 철원관광호텔(033-455-1234), 삼부연관광호텔(452-5884) 등의 호텔급은 물론 썬파크(455-9591), 파레스(455-8817) 등의 여관이 있다. 군사지역이라 면회객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여관도 많다.
먹을 것/경기 포천군이 아주 가깝다. 포천의 이동면은 두 가지 먹거리로 이름이 난 곳. 이제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이동갈비와 이동막걸리의 본산지이다. 이동갈비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이동면 시가지 양쪽으로 도열해 있고, 이동막걸리 직매점은 시가지에서 백운계곡으로 향하는 47번 국도변에 밀집해 있다. 지름길이 있다. 고석정에서 463번 지방도로로 계속 직진하면 47번 국도와 만나고 우회전해 남쪽으로 진행하면 이동면 시가지에 닿는다. 길이 한산해 30분이면 닿는다.
●한탄강 주변 명소
한탄강 주변은 '볼 것'이 밀집된 곳이다. 자연경관도 아름답지만 905년 궁예가 태봉국을 세우고 철원에 도읍을 정한 이후 한반도 중부의 핵심적인 지역이 됐기 때문이다.
멋진 절이 있다. '피안에 이르는 곳'이라는 의미의 도피안사(到彼岸寺)이다. 신라 경문왕 5년(865년)에 도선국사가 신도 1,000여명을 동원해 창건했다고 한다. 오래된 절답게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인 3층 석탑이 있다. 특히 철조비로자나불이 인상적이다. 통통한 보통 부처와 달리 갸름하다.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 잘 생긴 남자를 대하는 느낌이다.
지금은 앙상하게 폐허가 돼 버린 철원 노동당사도 이제는 중요한 볼거리가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뮤직 비디오를 찍었던 장소다. 기둥과 벽에는 여전히 총탄 자국이 무수하다. 피의 증거이자 분단의 상징이다. 길 옆에 위치해 있어 찾기가 쉽다. 예전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나 낙서를 일삼고 건물의 파편을 떼가는 경우가 많아 지금은 금줄을 쳐 놓고 출입을 막았다.
철원 여행에서의 보너스는 포천 북부지역. 어차피 가고 오는 길이기 때문에 같은 여행코스에 해당된다. 명산과 이름난 호수가 어우러진 산정호수 지역이 특히 사람들의 발길을 많이 유혹한다.
산정호수는 자인사와 등룡폭포, 비선폭포 등 절경이 널린 곳. 특히 호수를 두르고 있는 산책로는 데이트 코스로도 이름이 높다. 명성산 산행을 해볼만 하다. 명성산은 특히 억새로 유명하다. 지난 주 억새축제를 마치긴 했지만 여전히 산의 8부 능선에는 억새군락이 꽃을 피우고 있다.
명성산이 억새로 이름이 높다면 단풍으로 유명한 산은 백운산. 가파른 육산이라 오르내리기 힘들지만 강원 중부지방의 억센 산록을 조망하기에 좋다. 지금 6부 능선 위쪽으로 단풍이 만발했다.
고석정에 위치한 전적지 관리사무소(033-455-3129)에서 전적지여행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제2땅굴, 월정리역, 철의 삼각지대 전망대, 백마고지 등을 돌아보는 일정이다.
■길에서 띄우는 편지
한탄강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관광지가 하나 있습니다. ‘산 속의 우물’이라는 이름뜻을 갖고 있는 산정호수입니다. 1920년대 일본이 댐을 지어 만든 산정호수는 이승만 전대통령의 별장이 들어설 정도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합니다.
커다란 돌산인 명성산의 단풍 든 봉우리가 물에 비치면 정말 환상적입니다. 온천도 있습니다. 일찌감치 국민관광지가 되어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옥의 티가 있습니다. 바로 입장료입니다. 1,000원이니까 그리 비싼 편은 아닙니다. 문제는 입장료를 받는 방법입니다. 산정호수에 진입하는 도로는 포천군 영북면과 이동면 등 두 곳으로 나 있습니다.
물론 중간에서 만나 연결되는 길입니다. 산정호수에 관심이 없어도 이 길을 지나면 무조건 1인당 1,000원씩의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한탄강을 여행하던 나그네가 이동갈비를 맛보려고 지도따라 이 길로 들어서면 영락없습니다. 그래서 당하면 몹시 불쾌합니다.
우리의 여행지에는 산정호수와 같이 불합리하게 입장료를 받는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지리산 성삼재를 넘는 도로가 대표적입니다. 구례에서 남원으로 가는 지름길인 이 곳을 조금 오르다 보면 매표소가 나옵니다.
물론 도로 이용료가 아닙니다. 국립공원 입장료입니다. 입장료만 낸다면 그런대로 참을 만 합니다. 도로 주변에 있는 사찰인 천은사의 문화재 관람료까지 받습니다. 천은사를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90% 이상이라고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월악산국립공원도 그렇습니다. 수안보에서 충주호로 연결되는 지름길이 월악산을 지납니다. 역시 무조건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곳도 많습니다. 설악산국립공원을 타고 오르는 한계령과 미시령, 한라산국립공원을 감싸고 도는 산록도로 등에서는 진짜 산에 오르는 사람 외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길이 아닌 다른 곳에 매표소를 설치하기에는 관광지 자체가 너무 넓고, 사찰과 공원관리소의 의견 조율이 쉽지 않고 등등. 하지만 이런 구차한 이유 뒷편에 깔린 진짜 이유는 누구나 짐작하듯이 ‘돈을 많이 받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한국관광공사를 중심으로 ‘내나라 먼저 보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 이유 때문에 내나라 먼저 보기가 짜증날 수도 있습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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