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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69)14대 국회의장 시절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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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69)14대 국회의장 시절 ①

입력
2002.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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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25일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내가 맨 처음 쓴 '문민 정부'라는 말에 걸맞는 정부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그런 점에서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출범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뛰어 넘는 전환점이었다.김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임기 중 단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으며 재산을 국민 앞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3월30일 민자당 당직자 재산이 공개되면서 정치권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재산 공개의 덫에 걸려 박준규(朴浚圭) 당시 국회의장, 김재순(金在淳) 전 국회의장 등이 줄줄이 의원직을 내놓았다.

이렇게 나라가 뒤숭숭한 가운데 나는 4월1일 박준규 의장 후임으로 새 국회의장에 지명됐다. 청와대 주례 회동을 마친 김종필(金鍾泌) 당 대표가 카폰으로 지명 사실을 처음 알려 주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인사는 물론 각종 주요 정책 결정에서 보안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이 때문에 김 대통령이 나를 국회의장에 내정할 줄은 나 자신은 물론 어느 누구도 짐작치 못했다.

나는 기쁜 한편으로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재산공개와 사정(司正) 바람으로 동료 의원들이 무더기로 정계를 떠나고 있는데 나 혼자 영광을 얻는 것 같아 못내 착잡했다. 김 대표의 전화를 받고 얼마 있으니 기자들이 몰려왔다.

"소감은." "동료의원들이 정치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때여서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다. 책임이 무겁다." "국회 운용의 복안은." "실추된 국회의 권위를 살리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국회상을 정립하는 데 밑거름이 될 생각이다. 국회가 참다운 민의의 전당이 되도록 하겠다."

이때 한 기자가 물었다. "오랜 정치생활을 하면서 우리 국회가 꼭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당도 해 보고 야당도 해봐서 양쪽 입장을 다 안다. 솔직히 꼭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날치기다."

그만큼 나는 날치기가 뼈에 사무쳤다. 기자시절은 물론 31세에 제6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디딘 후 날치기는 우리 국회와 정치의 가장 어두운 구석이라고 늘 생각했다. 반드시 고쳐야만 할 고질병이었다. 그러나 이런 결심 때문에 14개월간의 국회의장 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93년 4월27일 나는 본회의 국회의장 보궐선거에서 269표 가운데 217표를 얻어 의장에 당선됐다. 언론인 출신 최초로 입법부 수장이 된 것이다.

나는 취임사에서 날치기 없는 국회를 거듭 다짐했다. "문민시대가 창출해야 하는 개혁은 시대적 소명으로 다가와 있으나 그 변화와 개혁을 주도해야 할 우리 국회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작은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심기일전해 국회를 민의의 전당으로, 개혁의 산실로 만듭시다. 이를 위해 힘의 논리나 소수의 무조건 반대 논리를 지양해야 하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변칙없는 국회'를 운영함으로써 민주적 국회상을 확립해야 합니다." '변칙없는 국회'란 바로 날치기가 없는 국회였다.

나는 국회의장 취임 후 이 다짐을 실천했다. 권위주의적 국회상을 탈피하고, 국민과 가까워지는 국회가 될 수 있도록 국회 내에 '입법민원실'을 설치했다. 여기서 국민의 법률 제·개정 및 폐지 의견을 모으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국회도서관을 일반인에게 확대 개방했다.

한편으로 한남동의 새 의장공관에 입주하는 것을 사양했다. 개인적으로 다소 호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국회 의사당 옆의 구 공관은 낡은 데다 도로에 접해 있어서 소음이 심했지만 온 나라가 개혁을 한다는 마당에 국회의 수장이 큰 저택에 산다는 것은 내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 내게 배당된 2대의 승용차 가운데 벤츠 승용차도 반납했다. 외국 국가원수를 맞는 등 국가적 행사 이외에는 경호차의 수행도 중지시켰다. 내가 솔선수범해 국회가 국민에게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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