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神 으뜸은 북두칠성… 옥황상제 궁궐도 있어원시시대에 인류는 자연의 온갖 다채로운 현상에 접하면서 그것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해냈다. 그들은 자연과 함께 호흡을 하고 자연과 일체가 된 삶을 살고 있었으므로 자연도 그들처럼 살아있는 실체로 인식했다. 자연의 현상 하나 하나는 모두가 살아있고, 움직이고, 말하는 모습인 것이다. 태양이 찬란하게 빛을 뿜어대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지럽히는가 하면, 장대비가 거세게 쏟아지고, 우레가 사납게 으르렁대기도 하는 모든 현상들이 그들의 배후에 있는 신의 활동이었다.
다시 말해서 원시 인류는 자연현상을 의인화해 살아있는 존재의 활동으로 파악했다. 자연의 위력이 엄청났으므로 인간보다 훨씬 위대한 존재인 신으로서 인식했던 것이다. 세계 모든 인류는 자연을 신격화한 이야기, 곧 자연신화를 갖고 있다. 그 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해, 달, 별, 바람, 비, 구름, 우레 등 천체와 기상 현상에 관한 신화이다. 아마 이것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천체와 기상 현상이 원시 인류의 삶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태양신을 살펴보자. 세계 각국 신화에서 대개 태양신은 남신이고, 달의 신은 여신이다. 그러나 고대 중국에서는 태양신이 여신이다. 동방의 대신(大神) 제준(帝俊)의 아내인 희화(羲和)가 곧 중국의 태양신이다. 그녀는 열 개의 태양을 아들로 낳았다. 이들 열 개의 태양은 동방의 끝 양곡(暘谷)이라는 곳에서 매일 하늘로의 여행을 시작하였다. 양곡이라는 곳은 뜨거운 물이 용솟음치는 계곡인데, 열 개의 태양은 여기에서 몸을 씻고 길 떠날 준비를 했다.
그곳에는 또한 부상(扶桑)이라는 거대한 뽕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열 개의 태양은 매일 아침 이 뽕나무 가지에서 교대로 도착하고 출발하였다. 뽕나무를 떠난 태양은 하늘을 한 바퀴 돌아 황혼 무렵 서쪽 끝 우연(虞淵)이라는 연못과 몽곡(蒙谷)이라는 계곡을 거쳐 다시 양곡으로 돌아왔다. 열 개의 태양이 한때 이 규칙을 어기고 동시에 모두 떠오른 적이 있었다. 그러자 초목과 곡식이 타죽고 강물이 말라붙는 등 지상세계는 불바다가 되었다. 결국 영웅 예가 활로 쏘아 아홉 개를 떨어뜨리고서야 이 소동은 진정되었다. 태양의 아들이 운행의 법도를 어겨 지상에 피해를 주었다가 제거된다는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있다. 태양신 헬리오스(아폴론이라고도 함)의 아들 파에톤은 태양의 수레를 잘못 몰아 지상에 불세례를 안겼다가 결국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추락한다.
태양신에 이어 달의 신을 살펴보자. 중국의 달의 신은 제준의 또 다른 아내인 상희(常羲)다. 그녀는 열 두 개의 달을 딸로 낳았다고 한다. 우리는 달과 관련된 또 하나의 여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영웅 예의 아내인 항아(姮娥)는 남편의 불사약을 훔쳐먹고 달로 달아나 두꺼비로 변해 그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달의 여신은 아니지만, 달의 정령(精靈) 정도로 간주할 수 있다.
다음 별의 신을 알아보자. 모든 별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북두칠성이다. 인간의 생명을 관장한다. 아울러 그곳은 옥황상제(玉皇上帝)의 궁궐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원래 북두칠성 숭배는 샤머니즘과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에서는 북두칠성이 새겨진 고인돌이 최근 발견돼 이 별에 대한 숭배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시신을 매장할 때 칠성판을 놓는 것은 죽은 영혼이 생사를 주관하는 북두칠성으로 되돌아간다는 고대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가 진 직후 혹은 해뜨기 직전, 새벽녘에 유난히 반짝이는 금성은 길을 잃은 자의 수호신으로 문학작품 속에 자주 등장한다. '서유기(西遊記)'를 보면 삼장법사 일행이 곤경에 빠질 때면 금성의 신인 태백금성(太白金星)이 변신해 나타나 길을 인도한다.
해 달 별 등 천체의 신들에 이어 기상현상의 신들을 살펴보자. 은(殷) 나라 때에는 바람의 신 곧 풍신(風神)에 대한 숭배가 있었다. 갑골문(甲骨文)에 의하면 사방의 바람에게는 각기 고유한 이름이 있었고, 그들을 맡아보는 신들이 있었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동방을 절(折)이라 했고 동풍을 준(俊)이라 했으며 동쪽 끝에서 동풍의 출입을 맡아보는 신을 절단(折丹)이라고 불렀다. 또 남방을 인호(因乎)라 했고 남풍을 호민(乎民)이라 했으며 남쪽 끝에서 남풍의 출입을 맡아보는 신을 인인호(因因乎)라고 부르기도 했다. 은나라 사람들은 이 사방의 풍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 바람의 신은 그 후 비렴(飛廉)으로 통일해서 불리우다가 풍백(風伯)으로 고정된다. '삼보황도(三輔黃圖)'라는 책에 의하면 비렴은 신령스러운 새로 능히 바람을 불러올 수 있는데, 사슴의 몸과 새의 머리에 뿔이 있으며 뱀의 꼬리에 표범 무늬였다고 한다.
비의 신인 우사(雨師)에 대한 이른 기록 역시 '산해경'에 보인다. 우사첩(雨師妾)이라는 신의 형상을 검은 몸빛에 양손에 뱀을 한 마리씩 쥐고 있고 왼쪽 귀에는 푸른 뱀을, 오른 쪽 귀에는 붉은 뱀을 걸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우사첩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아마 처음에는 비의 신이 여신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사첩은 은나라 때에 비를 관장하던 신으로 초(楚)나라에서는 병예( )라고도 불렸다. 구름의 신도 비의 신과 더불어 은나라 때에 숭배의 대상이었다. 갑골문에서 제운(帝雲)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 구름의 신을 상당히 존중했음을 알 수 있다. 구름의 신은 초나라에서 운중군(雲中君)으로 이후에는 운사(雲師), 운장(雲將) 등으로 불리웠다.
우레의 신은 각국 신화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 공포와 위엄을 상징하기 때문에 주신(主神)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기도 하다. 제우스와 황제(黃帝)는 모두 우레의 신을 겸했다. 중국에서는 뇌신(雷神), 뇌사(雷師) 혹은 뇌공(雷公)으로 불린다. 본래 남신이지만 번개만을 분리해서 여신인 전모(電母)를 숭배하기도 한다. 초나라에서는 풍륭(豊隆)이라고도 불렀는데 이것은 우레 소리를 본딴 이름이다. '산해경'에 의하면 뇌택(雷澤)이라는 호수에 뇌신이 살고 있는데, 용의 몸에 사람 머리를 했고 자신의 배를 두드리면 우레 소리가 난다고 했다. '수신기(搜神記)'에서는 뇌신의 모습을 입술은 붉고 눈은 거울과 같은데 털과 세 치쯤 되는 뿔이 나있고 머리통은 원숭이를 닮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바람 비 구름 우레 등의 신은 모두 강우(降雨)와 관련돼 있다.
끝으로 이들과 반대의 역할을 하는 가뭄의 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가뭄의 신은 발(魃)이라고 부르는데 원래 황제의 딸이었다. 푸른 옷을 입었고 대머리였다고 하니 보통의 여신들처럼 미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황제와 치우(蚩尤)의 전쟁에서였다. 치우가 풍백 우사 운사 등을 시켜 크게 비바람을 일으켜 황제군을 곤경에 빠뜨렸을 때, 천상에 있던 발이 아버지를 돕기 위해 내려왔다. 가뭄의 신이 내려오자 비바람은 곧 걷혔고, 황제군은 치우군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한번 지상에 내려온 발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고 계속 지상을 떠돌아야만 했는데 그녀가 이르는 곳 마다 가뭄이 들어 어느 땅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중에 그녀는 적수(赤水)의 북쪽 먼 땅에 겨우 정착하였지만 심심하면 가끔 그곳을 빠져 나와 가뭄을 일으키곤 했다 한다.
중국의 자연신화에는 우리 고대문화와 상관된 내용이 적지 않다. 대표적 기상신(氣象神)인 풍백 우사 운사는 치우편에서 환웅천왕(桓雄天王)을 도와 고조선의 개국에 참여하기도 했던 동이계(東夷系) 민족과 관련이 깊은 신이다. 아닌 게 아니라 풍백의 전신인 바람의 신 비렴의 실체에 대한 논의에서 일부 언어학자들은 비렴이 한국어인 '바람'의 고대어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설은 사슴의 몸에 새 머리를 한 비렴신이 고구려 무용총(舞踊塚) 벽화에 출현함으로써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연신화는 인간이 자연과 함께 느끼고 대화하면서 살아갔던 시절의 산물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과 너무 동떨어진 존재가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공해, 인간성 상실 등 각종의 심각한 문제를 앓고 있다. 따라서 생태적 감수성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 시점에서 자연신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교수
그림 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교수
●자연신화학파란/모든 신화 태양과 달의 상징체계로 해석
19세기에 비교언어학을 바탕으로 막스 뮐러 등에 의해 성립된 학파.
모든 신화를 태양 혹은 달의 일원화된 상징체계로 해석하는 경향을 지녔음. 신화는 언어의 모호성으로부터 발생하였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을 '언어질병설'이라고도 부름. 20세기에 들어와 학설에 문제가 많아 급격히 쇠퇴함. 최남선(崔南善)도 이 학파의 영향을 받아 우리 신화를 모두 태양신화체계로 파악하고, '밝'의 지리적 범주를 '발칸'반도에까지 확대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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