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영화 데뷔작 '접속' 촬영 후 그녀가 한 말은 맞았다. "모든 색깔의 연기를 소화하기 위해 색깔 없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그는 계속 변신했고 합당한 평가를 받았다. 살구빛 볼이 예쁜 열 일곱 홍연이('내 마음의 풍금')인 듯 싶더니, 어느새 불륜을 저지른 농염한 주부 보라('해피 엔드')가 됐다. 지난해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는 완벽한 삼류 깡패로 변했다. 인생에 지쳐 악만 남은, 분노에 쌓여 주먹에 실핏줄이 툭툭 튀어나오는 여자 깡패 수진이 바로 전도연(29)이었다.그가 TV에 돌아온다. 11월20일 첫 방송하는 SBS 16부작 드라마 '별을 쏘다'(극본 윤성희, 연출 이장수)에서 영화배우 매니저 한소라 역을 맡았다. 충무로에서 가장 파워 있는 여배우로 꼽히는 그가 TV에 출연하는 것은 97년 SBS 드라마 '달팽이' 이후 5년만의 일. 역대 최고의 드라마 출연료인 회당 625만원을 받고 TV로 돌아온 그는 어떤 심정일까.
"4일 압구정동의 한 미용실에서 첫 촬영이 있었어요. 그냥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가벼운 신이었는데 정말 떨리더군요. 92년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할 때도 이 정도로 두렵고 긴장됐었나 싶더군요. '첫 촬영치고는 만족스럽다. 4회까지는 리허설로 생각하고 부담 가지지 말라'는 이 PD의 말을 듣고서야 겨우 안심이 됐습니다."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마치 TV에 첫 출연하는 신인 여성탤런트 같았다. "1년에 고작 한 번 대중과 만나는 영화와 달리 1주일에 두 번이나 만나 그 반응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지러울 정도"라고도 했다. 그러나 영화 판에서 잘 알려진 그의 악바리 근성이 어디 갈까. '피도 눈물도 없이'를 촬영하면서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해 4시간 동안 울면서 팔 굽혀 펴기 100번을 했던 배우가 전도연이다.
"드라마 선택이 어려웠던 만큼 부담이 너무 커요. 일부에서는 '왜 드라마에 출연하느냐'며 말리더군요. 연기자 '전도연'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치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큽니다."
'별을 쏘다'는 인생의 목표가 오로지 결혼뿐이었다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 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사랑한 남자(이서진)의 배신을 겪으면서, 그리고 오빠(박상면)의 사고로 영화배우(조인성)의 매니저 일을 대신 맡으면서 인생과 사랑의 참 의미를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극중 한소라가 제 나이 또래인 서른이에요. 성격도 비슷해요. 늘 일상에서 도발을 꿈꾸는…. 그리고 누군가를 진짜 사랑해서 결혼하고픈 것도 똑같죠."
드라마는 거의 전도연을 위한 작품. 당초 미용실에서 벌어지는 아기자기한 이야기였다가 올해 초 그가 캐스팅되자 극중 배경과 스토리가 확 바뀌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촬영 후 그가 TV에 출연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알려지자 방송사 제작본부장까지 섭외에 나섰던 만큼 그 정도 '궤도 수정'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이 PD를 만나는 순간 느낌이 왔어요. 제가 하고 싶은 드라마가 멜로 드라마였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것도 이 PD 덕분이었죠. 하지만 이번 드라마 후에는 다시 영화를 할 생각이에요."
인터뷰 내내 옆에서 잠자코 있던 이장수 PD가 한마디 거들었다. "'접속'에서 '피도 눈물도 없이'까지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았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세 가지입니다. 그녀는 국내에서 연기를 가장 잘 하는 여배우다. 좋은 배우랑 일하는 것은 행복하다. 그리고 빨리 찍고 싶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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