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 계절엔 정치인들만 바쁜 게 아니다. 일부 교수들도 바쁘다. 어느 대통령 후보의 정책 자문단은 700여명의 교수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어떤 교수들은 자기 이름 밝히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국민들의 정치혐오주의를 감안컨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다섯 가지 이유 때문이다.첫째, 책임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정치인의 브레인 역할을 한 교수들에게 책임을 묻는 문화가 전혀 없다. 이건 곤란하다. 교수들이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아닌 이상 음지에서 나와 양지에서 활동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둘째, 정치혐오주의의 극복을 위해서다. 교수들이 정책 자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정치혐오주의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일관된 처사일 것이다.
셋째, 정치개혁을 위해서다. 얼굴을 감춘 교수들은 정치인들의 졸(卒)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교수들이 공개적인 실명제로 특정 대선 캠프에 참여하게 되면 자기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 대선 후보에게 긍정적인 압력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예컨대, 그 대선 후보가 자신이 수긍할 수 없는 노선으로 치달을 경우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연고주의의 극복을 위해서다. 자신의 평소 색깔이나 주장과는 전혀 맞지 않는 후보의 대선 캠프에 들어가 있는 교수들이 많다. 연고주의와 정실주의에 굴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래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길 꺼려 하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수가 자신이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옹호할 수 없는 후보를 위해 일한다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다섯째, 출세주의의 통제를 위해서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오직 공익을 위해 대선 캠프에 참여하고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 가운데엔 자신의 출세 또는 개인적인 잇속을 위해 참여하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심지어 이쪽 저쪽에 양다리를 걸치는 교수들마저 있다. 이건 교수의 윤리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판 윤리로도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는 전제 하에 정치를 멀리 하고 정치를 싸잡아 비판하는 지식인을 양심적이고 깨끗한 지식인이라고 생각해 왔다. 과거 독재정권 치하에선 지식인의 그런 처세가 옳은 것이었겠지만, 여전히 그러한 잣대로 지식인의 정치 참여를 평가하는 건 온당치 않은 것 같다.
교수들의 정치 참여는 바람직하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도 특정 대선 캠프에 참여한 지식인들이 공개적인 실명제 방식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부디 모든 교수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름을 떳떳하게 밝히면서 정치 참여를 해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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