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어제부터 현대상선에 4,900억원을 긴급 대출해 준 산업은행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설의 진원지가 산업은행이었던 만큼, 이번 감사원의 전면감사에 쏠린 관심과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감사원은 무척 소극적인 자세다. 현대상선의 경우도 대북 송금설 의혹보다 대출의 적정성 여부에 감사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입장이다. 사건의 전모를 소상히 파악할 수 있는 계좌추적에도 부정적이다. 처음부터 아예 한 자락을 깔고 있다. 이러다가는 자칫 통과 의례식 감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벌써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통상적이고 형식적인 감사로 대충 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국민들은 감사원이 철저한 감사를 통해 대북지원설을 속시원히 규명하기를 바라고 있다. 감사원이 밝혀야 할 의문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4,000억원의 긴급대출이 통상 한 달여 이상 걸리는 정상적 대출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3일 만에 이사 전결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현대상선의 주 채권은행인 외환은행도 이처럼 거액이 대출됐는지 감쪽같이 몰랐다.
거액을 대출하는데도 대출 서류에는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의 서명도 없었다. 대출 사실은 은행연합회의 여신정보현황(CRT)에도 누락됐다. 산업은행의 문서 접수 대장이 조작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충식 사장은 나중에 산은 총재를 찾아가 "우리가 쓴 돈이 아니니 못 갚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대출지시가 있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정상적인 자금의 흐름이 아닌 정황은 곳곳에 널려 있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형식 논리를 내세워 계좌추적을 꺼리고 있다. 진실을 밝힐 수단이 있는 감사원이 이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책임 있는 국가기관의 태도가 아니다. 감사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좌 추적을 통해 4,900억원의 사용처를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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