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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철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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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철새

입력
2002.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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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조직의 비능률성을 말할 때 '철밥통'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일이야 제대로 하든 말든, 법에 의해 신분이 보장돼 있으니 내쫓길 일이 없다는 비아냥조의 말이다. 얼마 전에 고위 공무원을 하고 있는 친구와 만나 얘기를 하다 무심코 이 말을 썼더니 "공무원 자리가 얼마나 불안한지 모르는 말씀"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면 쫓아내지야 않지만, 시도 때도 없는 인사에서 찬밥 신세가 되면 차라리 내쫓기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앙인사위원회가 내놓은 통계에 의하면 정부 중앙부처의 실·국·과장의 평균 재직기간은 1년에 불과하다. 1997년 이후의 경우를 보면 실·국장의 평균 재직기간은 1년20일이었으며, 과장급의 평균 재직기간은 1년1개월21일이다. 금융감독위원회의 경우 실·국장은 8개월10일, 과장급은 7개월29일이면 다른 자리로 옮겼다. 한 자리에 앉아 차분히 일하는 것은 고사하고 겨우 업무파악이 되었을 만하면 '철새'처럼 옮겨가는 것이다.

■ 최고위직인 장관급의 경우는 더 한심하다. 최근 한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역대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2개월10일이었다. 그나마 박정희 정부의 오랜 독재기간에는 22개월 정도로 가장 수명이 길었을 뿐, 이후 전두환(17.11개월) 노태우(12.88개월) 김영삼(11.45개월) 김대중(10.54개월) 정부의 순으로 점점 짧아졌다. 민주화가 이루어질수록, 정권교체가 거듭될수록 장관의 '목숨'이 짧아진 셈이다.

■ 장관에서부터 과장급에 이르기까지의 고위직 자리에 평균 1년마다 새 얼굴이 등장하거나 자리를 옮기는 마당이니 일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이렇듯 잦은 자리옮김에서 살아 남으려면 업무의 전문성이나 경험, 실력 등은 뒷전이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게 '장땡'이다. 어쩌면 공무원 스스로가 서로서로 돌아가며 '좋은 자리'를 나눠 갖기를 원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공무원 조직의 비능률성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철밥통'이 아니라 '철새'를 더욱 경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신재민 논설위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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