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파식 행태가 정치판을 휩쓸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입만 열면 '신성한 의사당'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 의원들 자신이 서로 삿대질 하며 욕설을 퍼붓고 있다. 뒷골목 불량배가 무색할 지경이다.한심한 놈, 또라이, 양아치, 인간 말종, 능지처참 할 놈, 자폭해라, 지랄들 말라고 해, 발악을 하네…. 신문에 인용된 욕설만 해도 이 정도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정치판은 더욱 이성을 잃고 있다. 어떤 후보도 안심할 만한 지지층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려는 폭로전 난타전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노벨평화상까지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아무리 막가는 정국이라지만 명색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할 일, 안 할 일을 가려야 한다. 자기나라 대통령이 2년 전에 받은 노벨상을 확실치도 않은 근거로 비난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로비설이 사실이라면 상을 반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는데, 이게 국회의원이 할 말인가.
김대중 대통령은 한평생 극단적으로 자신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 속에서 정치를 해 왔다. 그는 97년 대선에서 득표율 40%로 겨우 승리했다. 그를 찍지 않은 60% 중 상당수는 단순하게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기보다 반 김대중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반 김대중 정서는 지역감정 계층 이념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정적이었던 군사정부가 오랜 세월 왜곡 유포시킨 그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는 반 김대중 정서와 싸워야 했다. 그의 노벨상 수상이 온 국민의 축하를 받지 못한 것도 반 김대중 정서의 영향이 컸다. 햇볕정책이나 노벨상 수상 등에서 김 대통령이 반대세력의 마음을 잡지 못한 데는 그 자신의 잘못도 있다. 조급하고 일방적이고 집착한다는 인상을 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반대세력은 항상 반대할 뿐"이라는 생각으로 설득을 포기하거나 적대감정을 품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노벨상 로비설에 대한 야당의 공격은 반 김대중 정서를 겨냥하고 있다. 근거가 불충분 하거나 논리적인 허점이 있더라도 일단 대통령을 공격하면 일정한 호응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눈을 돌려 나라도 보고 세계도 봐야 한다.
김 대통령은 지난 5년 동안 몇 가지 잘못도 저질렀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역사와 승부하려는 대통령이었고, 남북관계나 인권문제 등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룩했다. 그는 또 야당시절 오랜 민주화 투쟁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데 기여했다. 군사정부 아래서의 민주화투쟁은 오늘날 통상적인 야당의 투쟁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투쟁이었고, 억눌린 국민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는 충분히 노벨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노벨상에 대한 김 대통령의 오랜 집념과 대통령 주변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을 감안할 때 나는 로비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지미 카터나 코피 아난처럼 가만히 앉아있어도 노벨평화상이 굴러들어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므로 로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로비가 상식에 어긋날 만큼, 국가에 해를 끼칠 만큼 지나쳤다면 당연히 문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의혹만으로 노벨상을 놓고 정치적인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
노벨상은 세계가 그 권위를 인정하는 중요한 상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 사람이 그 상을 받았다면 그것은 개인의 명예일 뿐 아니라 국가의 자랑이다. 온 국민이 기꺼이 마음을 열고 축하해야 할 일이다. 노벨상 시비는 옹졸하고 수치스럽다. 반 김대중 정서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노벨상이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을 확실하게 반대해야 한다.
막가파식 정치에 국가가 멍들고 있다. 국민이 심판자가 돼야 한다. 선거일까지 눈을 크게 뜨고 누가 저질 정치를 선동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폭로정치에 박수치는 유권자로는 정치개혁을 이룰 수 없다.
장명수/본사 이사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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