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정말 심각한 모양이다. 체면이고, 여론이고 다 팽개치고 막가파식 정쟁에 혈안이 돼있던 정치권이 갑자기 경제위기 대책을 마련하자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보니 그렇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11일 각각 여야가 초당적으로 참여하는 '비상경제대책기구'와 '정책협의회' 구성을 경쟁적으로 제안했다. 정몽준(鄭夢準) 의원도 국민의 경제심리 안정책을 주문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한나라당이 13일 예정했던 '김대업 테이프' 조작의혹 관련 폭로회견을 무기 연기하는 등 정쟁을 잠시 중단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다분히 냉소적이다. "한바탕 유행처럼 목청만 높이다가 또 유야무야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때 그때 정치적 필요에 의해 경제를 외치다가 상황이 바뀌면 이내 외면해 버리는 정치권의 풍토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서도 영수회담 등을 통해 모두 5번의 초당적 경제협의체 구성합의가 있었지만 성과가 없었음은 물론, 회의조차 열리지 않은 경우도 두 번이나 됐다. 결국 정치권의 이번 경제 챙기기도 대선에만 눈이 팔려 민생을 돌보지 않는 데 대한 비난여론을 일시 모면하기 위한 다른 형태의 대선전략이 아니냐는 지적이 무성하다. 각 당이 내놓은 상황 진단과 대책이 정쟁의 소재가 될 소지도 있다. 한나라당은 성장잠재력 저하를 비롯한 내부 요인을 경제침체 원인으로 꼽은 반면 민주당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설 등 외부 환경을 중시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신경전이 불거지고 있는 양상이다. 현재의 양당관계에 비추어 이는 감정싸움으로 번질 개연성이 크다.
정치권 경제대책의 무용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왕 경제 살리기에 나섰으면 과거와 같은 일과성 제스처가 아니라 보다 책임감 있고 정교한 접근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대우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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