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6년 10월14일 잉글랜드를 침략한 노르망디공(公) 윌리엄('정복자 윌리엄')의 군대와 잉글랜드왕 해럴드의 군대가 잉글랜드 남동부 헤이스팅스에서 영국사를 뒤바꾼 전투를 벌였다. 일몰 경에 해럴드가 전사하면서 잉글랜드군은 와해됐고, 노르망디공 윌리엄은 윌리엄1세라는 이름으로 노르만 왕조를 열어 영국의 새 주인이 되었다. 이 전투 이후 영국 지배계급은 색슨계(系)에서 프랑스 노르망디 반도 출신의 노르만계로 바뀌었다. 1066년의 이 사변을 영국 사학자들은 '노르만 정복'이라고 부른다.헤이스팅스 전투는 영국의 역사만이 아니라 영어의 역사도 크게 바꾸었다. 노르만 정복 이후 정복자들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는 영국 상류층의 언어가 되어, 영국에는 그 뒤 수백년간 지배계급의 언어(프랑스어)와 피지배계급의 언어(영어)가 분리되는 기묘한 이중 언어 상태가 지속되었다. 프랑스어는 또 단지 지배계급의 언어 자리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하층민의 언어인 영어에까지 급속도로 침투해 영어의 모습을 크게 바꾸었다. 그래서 영어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노르만 정복을 경계로 삼아 그 이전의 영어를 고대 영어라고 부르고, 노르만 정복부터 16세기 초까지의 영어를 중세 영어라고 부른다.
1204년에 영국이 노르망디의 영토를 잃어버림으로써 영국 왕실과 프랑스어권과의 영토적 관련이 끊기고,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지속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으로 영국인들의 애국심이 크게 고양되면서 14세기 중엽 이후 영어는 공용어의 지위를 되찾았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영어 어휘의 반쯤이 프랑스어로 채워진 뒤였다. 게다가 보수적인 영국 법정이 프랑스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사용한 것은 1731년에 들어서였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영국 땅에서 7백년 가까이 동거한 셈이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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