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완벽한 질서를 갖춘 신의 작품인가? '세상의 근원'을 추구하는 물리학자들은 물질과 반물질 사이의 절대적 대칭을 기본전제로 오늘날의 물리학을 세웠다. 이 대칭성은 아직 실험으로 검증되지 않았다.우리는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에 살고 있어서 반물질을 일상에서 볼 수 없다. 반물질은 물질과 만나는 순간 소멸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반물질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아왔고, 최근 작은 결실을 거뒀다. 국제 실험팀인 아테나(ATHENA)팀이 유럽핵물리연구소(CERN) 입자가속기를 이용해 반(反)수소 5만개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연구논문은 네이처(3일자)에 실렸다.
양성자(+전하) 하나와 전자(-전하) 하나로 이루어진 수소와 반대로 반수소는 -전하의 반양성자와 +전하의 양전자로 구성된다. 입자와 반입자의 대칭성이란 구체적으로 질량, 전하량, 수명이 같다는 뜻이다. 다만 반입자는 전하의 부호가 반대다.
반수소는 가속기에서 우연히 수십개 정도 만들어지긴 했지만 일부러 만들기는 무척 어렵다. '물질의 실험도구'는 실험 대상인 반물질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럼 아테나팀은 어떻게 반입자를 만들었을까? 해답은 '자기장 덫'이었다. 이들은 입자가속기에서 만든 반양성자와,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반전자를 구리관에 넣어 자기장을 형성함으로써 반입자를 가두었다. 구리관 내부는 반입자가 어떤 반응도 하지 않도록 우주 상태의 진공을 유지하고, 반입자의 움직임을 느리게 하기 위해 액체헬륨 온도(영하 268도)로 차게 했다. 연구팀은 이 자기장 덫을 제어해 반양성자와 양전자가 만나도록 했다.
그러나 반수소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순간 자기장 덫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반수소는 곧 '물질의 우주'와 부딪쳐 소멸하고, 연구팀은 살인범이 달아난 뒤 현장에 온 수사관처럼 단서만 추적한다. 반수소가 남긴 단서는 양성자-반양성자, 전자-양전자가 동시에 한 곳에서 소멸한 것을 보여주는 감마선과 특이한 에너지들이다.
1997년 또 다른 반수소 국제 연구팀인 어트랩(ATRAP)팀과 공동연구를 수행했던 제원호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반수소를 만드는 궁극적인 목적은 반수소를 포획, 수소와 정밀한 비교를 통해 대칭성이 유지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학자들은 각각의 반입자들을 연구했는데 대칭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 또 깨질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연구결과에선 반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이 10억분의 1 오차 내에서 같은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반물질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보다 확정적일 것이라는 게 고집스런 실험 물리학자들의 시각이다. 반수소를 레이저 분광기로 검사할 수만 있다면 수소와 똑같은 스펙트럼을 내는지, 즉 수소와 반수소가 절대적 대칭을 이루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수소는 레이저 분광학을 통해 에너지구조가 가장 정밀하게 알려진 원소다.
아테나팀 연구를 주도한 덴마크의 제프리 행스트 아루스대 교수는 "만약 반수소가 수소와 같은 방식으로 운동하지 않는다면 물리학 교과서는 완전히 새로 써야 한다"고 이 실험의 의미를 설명했다. 만약 대칭성이 깨지면, 궁극적인 기본입자와 그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표준모형'과, 이를 토대로 세워진 양자역학 등 인간이 세운 우주의 법칙이 모두 무너지는 셈이다.
물질과 반물질의 대칭성 규명은 기존의 물리학법칙을 검증하는 작업인 동시에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있다. 빅뱅때 같은 양만큼 생성된 반물질이 왜 모두 소멸하고 물질의 우주만 남았는가 라는 우주 존재에 대한 커다란 질문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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