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동물원 킨트/ 수신: 동물원 원장/ 10787 부다페스트 거리 34/ 지원서류 양식 C/ No.62의 모니터링' 동물원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서류에 이렇게 적기 시작한다. "동물원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아.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노력해도 머릿속에는 쓸데없는 생각만 떠올라." 원고지 700매 분량의 동물원 지원 동기. 배수아(37)씨의 장편소설 '동물원 킨트'(이가서 발행)다.배씨가 1년 여의 독일 체류 뒤 7월 말 귀국해 펴낸 책이다. 그는 이국 체험을 '이방인 놀이'라고 부른다. 문법에 맞는 문장을 만들고 신경 써서 발음하기(언어에 능통하게 되면 이방인 됨을 완전히 즐길 수 없으므로),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지 않고 전화도 자주 하지 않기(돈을 아껴야 하므로). 일단 이방인이 되면 주변의 사물과 현상이 다르게 보인다. 낯선 곳에서 낯선 글이 쓰여진다. 고립의 축복. 작가가 새 소설의 아이덴티티로 규정한 것이기도 하다.
동물원 킨트는 소설에서 독일에 온 외국인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다. 그와 마주친 사람은 묻는다. "동물원 킨트(독일어로 '어린이'라는 뜻)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어. 도대체 그게 뭐지?" "동물원을 갖고 싶어하거나, 그곳에 계속해서 있고 싶어하거나, 그곳을 찾아간다거나, 그곳에 속하고 싶어하는 거야. 혹은 그것이 되고 싶어하는 거야. 서서히 말이야." 이상한 말을 만들었고 이상한 의미를 붙였다. 동물원 킨트가 직원채용 원서에 쓴 '동물원 모니터링'이 소설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책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만을 위해 들려주는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한테 얘기하듯 평어체로 쓰여졌다.
독일에 온 외국인은 동물원을 갖고 싶은 마음에 동물원 근처에 자리잡았다. 의사는 그가 점점 시력을 잃어 실명할 거라고 했다. 외국인은 동물원에서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여자를 만났다. 여자가 하마처럼 보여서 '하마'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마는 갑자기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외국인은 하마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찾아가는 길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얼개다. 그 누군가를 만나건 만나지 않건 주인공은 타박타박 길을 걸어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깨달음을 건져올린다. 하마를 찾는 외국인도 그랬다. 작은 가게의 점원 '보도'와 커다란 백화점식 상점에서 만난 '두스만', 러시아의 한 호텔에서 일했던 '페터'를 통해 외국인은 하마의 흔적을 좇는다. 그 길 위에서 얻은 것은 '동물원이 되는' 체험이었다.
작가가 친절하게 일러준 것처럼 '동물원'은 '고립'의 다른 이름이다. 외국인은 고립을 찾아 떠났으며, 고립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했으며, 마침내 충만한 고립을 얻었다. 완전하게 홀로 된 뒤에야 그는 하마를 만날 수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나는 하마에게 '동물원 놀이'를 알려 준다. 그것은 작가가 낯선 나라에서 잠시 잠깐 즐겼던 '이방인 놀이'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작가는 '동물원 킨트'로 놀이하는 법을 살그머니 알려준다. "동물원에 가기 위해 다른 것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리고 이미 그렇게 했다면, 그리고 어떤 여행지에서라도 가장 먼저 그 도시의 동물원을 찾아간다면, 또한 동물원을 혼자 찾아갈 때가 가장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는 이미 동물원 킨트야."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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