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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마오쩌둥, 김대중, 세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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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마오쩌둥, 김대중, 세리박

입력
2002.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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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이름이란 고유의 것이다. 모두가 각기 다른 이름을 갖고, 그것으로 정체성을 삼는다.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든가,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다든가 하는 말은, 우리가 이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해 왔나를 잘 말해 준다.1972년 처음 유럽에 갔을 때, 내 여권에는 영문으로 '원 킴'(Won Kim)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입국서류건 입학서류건 어디에나 'Kim, Won'이라고 썼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말썽과 혼돈을 일으켰다. 그 결과는 매번 내게 손해를 끼쳤다. 출입국 수속에 시간이 걸리고, 우편물은 항상 'Mr. Won' 앞으로 왔다. 학교에서는 내 이름이 '킴'이었다. 앞에 썼으니 으레 그것을 내 이름으로 불렀다. '킴 노박'이나 '킴 베이신저'처럼 말이다. 마침 독일에서 새 담배가 발매되었는데, 그 이름이 '킴(KIM)'이었다. 내 친구들은 그것을 '네 담배'라고 불렀다. 외국에서는 요즘도 자주 '원 선생' 앞으로 편지가 날아와 생경한 느낌을 갖게 한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궁리를 하다가도, 그냥 덮어 버리고 말았다. 모든 것이 내가 아직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탓이고, 한국의 국력이 강하지 못한 탓으로 여긴다.

일본 건축가 당게겐죠(丹下健三)가 언제부터 자기 이름을 거꾸로 쓰기 시작했는지, 모든 영어로 된 책에는 'Kenzo Tange'로 표기된다. 그 사정을 잘 모르는 요즘 학생들은 일본에 '겐죠'라는 성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일본인들의 영어 이름은 아예 앞뒤가 바뀐 것으로 알면 된다.

중국 사람들은 절대로 자진해서 이름을 거꾸로 쓰지 않는다. 그래서 마오쩌둥(毛澤東)이라 쓰면, 서양 사람들도 당연히 그의 성이 마오(毛)인 줄 안다. 장제스(蔣介石), 저우언라이(周恩來), 덩샤오핑(登小平)이 모두 그렇다. Lee Pung(李朋)이라고 써도, 어느 통신사건, 신문이건, 알아서 Mr. Lee로 적는다.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습관이 이렇다는 걸 서양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우리는 'Syngman Rhee(李承晩)' 시절부터 잘못했던 것 같다.

성을 앞에 쓰는 나라와 사람들은 적지 않다. 중국, 한국, 일본만 해도 14억명이나 된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다. 거기 또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 홍콩, 싱가폴, 말레이시아 및 전세계의 화교와 일본계, 한국계, 나아가 헝가리인까지 치자면, 인구로, 범위로, 문화적 비중으로 보아 결코 서양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무시할 상황이 아니다. 영어 인구는 세계 전체 인구의 7.6%(92년)이며, 북경어 상용 인구는 15%나 된다.

이름이라는 거야 물론 남이 불러 주도록 만든 것이지만 부르는 사람 편할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대체로 그것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인들의 서구에 대한 저자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요즘처럼 박세리와 박찬호가 유명해졌을 때가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약간의 혼란이 있은 후에는, 아! 한국 사람들은 성이 앞에 온다더라 라고 알게 되지 않을까.

가장 아쉬웠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는 장면이었다. "수상자는 대통령 김대중"이라고 세계각국 방송에 퍼져 나갔는데, 축하식에서 노래하는 가수 조수미씨는 "수미 조"로 소개된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한국인의 성에 관해 헷갈렸을 것이 뻔한 일이다. 백남준, 백건우, 박찬호, 박세리, 김미현 등의 이름이 외국에 알려질 때, 다같이 바로 잡기로 마음 먹으면, 나도 덕분에 'Mr. Won' 신세를 면할 수 있지 않을까.

부산아시안 게임에 온 북한 선수들이 계순희를 '순희 계'라고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름 표기문제에 대해서도 남북이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말 사랑의 첫번째 시도가 아니겠는가.

김 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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