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10월12일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올림으로써 대한제국이 출범했다. 1910년 8월22일 한일 병합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기까지 13년간 존속한 대한제국은 멸망을 눈앞에 둔 조선왕조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이 신장개업은 황제라는 칭호를 갈망하던 고종의 허영심을 채워주었을 뿐, 썩은 왕조의 다해가는 운명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고종은 힘없는 전제군주였고, 그의 제국은 허울뿐인 제국이었다.대한제국은 1919년 4월13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쳐 1948년 8월15일 한반도의 북위38도선 이남에 세워진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연원이 되었다. 1948년 9월9일 38선 이북에 수립된 정부는 나라 이름으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취했다. 대한과 조선의 이데올로기적 긴장이 시작된 것이다. 이 긴장은 실은 해방공간에도 있었다. 좌파평론가 김동석(金東錫)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에 쓴 수필 '조선과 대한'은 그 긴장 위에 얹혀 있다. 김동석에게 대한과 조선은 각각 우리 민족의 과거와 미래를 표상했다. 대한이 우리가 결별해야 할 과거인 것은 그것이 '일제가 조선을 점령하기 전 그 옛날의 청춘 없는 노폐국(老廢國)'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우리의 살 길은 오로지 새로운 조선 건설에 있는 것을 그래 대한인들은 모른단 말인가?"
우리는 김동석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 오늘날 대한 또는 한국은 많은 굴절과 시련을 딛고 이루어낸 정치적 민주화와 상대적인 풍요를 상징한다. 그리고 조선이라는 말은 무지막지한 전체주의와 가난을 상징한다. 조선이라는 말의 이 슬픈 운명은 한국인인 기자에게도 유감스럽다. 다른 한국인들처럼 기자도 결국 조선인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고종석/편집위원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