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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을 쏘았다 ― 한국의 마타하리, 여간첩 김수임 /사랑에 목숨 건 여간첩 김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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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을 쏘았다 ― 한국의 마타하리, 여간첩 김수임 /사랑에 목숨 건 여간첩 김수임

입력
2002.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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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숙희 지음·정우사 발행·9,500원김수임(1911∼1950)이라는 이름 앞에는 두 단어가 놓인다. '비운의'라는 말과 '여간첩'이라는 말. '한국의 마타하리'라는 다른 수식어도 유명하다. 그의 40년 짧은 생은 그렇게 정의된다.

노 수필가 전숙희(82)씨가 김수임의 생애를 기록한 '나는 사랑을 쏘았다 ― 한국의 마타하리, 여간첩 김수임'을 출간했다. 전씨는 김수임의 이화여전 후배로, 김수임이 미군 헌병관과 살림을 차렸던 서울 옥인동 19번지 저택에서 함께 살면서 그로부터 사랑의 달콤함과 아픔에 관한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전씨는 김수임이 세상을 떠난 뒤 52년 만에 그의 사랑과 죽음을 증언하는 다큐멘터리를 펴냈다.

김수임의 삶 자체가 분단의 상처와 겹쳐진다. 이화여전 영문과를 다니던 그가 학교 선배인 시인 모윤숙의 소개로 함흥형무소에 갇혀 있던 이강국을 면회했다. 사랑이자 비극의 시작이었다. 경성제대와 독일 베를린대를 나온 지식인으로 일제시대부터 좌익활동을 했던 이강국은 해방후 공산당 간부로 활약한다. 평양으로 간 이강국이 돌아오지 않자 김수임은 사교모임에서 만난 주한미군 헌병사령관 베어드 대령과 동거하게 된다.

남로당 재건의 임무를 받고 서울로 돌아온 이강국이 김수임과 재회한 때부터 운명의 수레바퀴는 걷잡을 수 없이 굴러간다. 이강국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공문을 공포했다가 긴급 체포 대상이 되고, 김수임은 베어드 대령과 함께 사는 집에 연인을 숨긴다. 쫓기는 이강국을 의사로 변장시켜 베어드 대령의 전용차에 태우고 개성으로 탈출시켰다.

오로지 사랑에만 충실했던 이 사건이 김수임의 생을 마감하게 했다. 그는 한국전쟁 직전 간첩죄로 체포돼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형에 처해졌다. 탈출한 이강국도 북한에서 남로당 숙청에 연루돼 1955년 사형선고를 받는다. 전숙희씨가 적은 대로 '사랑과 죽음, 기약 없는 분단의 슬픔이 빚은' 영화 같은 실화였다.

저자는 김수임의 마지막 며칠을 돌아본다. "간첩으로 체포되기 몇 주 전에도 수임 언니는 나를 불러 북으로 떠난 후 소식없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호소했다.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무능한 나였지만 그녀는 마음놓고 자기 심정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크게 위안을 받는 듯했다." 전씨가 기억하는 김수임은 따뜻하고 순진했고, 기꺼이 사랑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김수임을 끌어주었던 것, 그리고 마침내 김수임의 심장을 쏜 것은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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