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63·사진)씨가 여덟번째 소설집 '꺼오뿌리'(주류성 발행)를 펴냈다. 표제작 '꺼오뿌리'와 '아론''미늘' 등 단편 3편을 실은 단출한 책이다.김문수는 예리한 감각과 문제의식을 갖고 분단의 아픔과 산업사회의 그림자를 그려낸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런 김씨가 환갑을 훌쩍 넘겨 새롭게 펴낸 작품집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다룬 것이다. "별반 새로울 게 없는 범속한 얘기에 불과한지도 모르지만, 소설의 기원이 시중에 떠도는 자잘구레한 이야기(街談巷說)에서 비롯되었다는 고전적 학설에 따르면 그의 작품들은 소설의 정의에 가장 근접"(평론가 장영우씨)하다고 할 것이다.
김문수씨 소설의 맛은 우선 표제작의 말잔치에서 찾아진다. 10여년 전 중국여행 낙수(落穗)를 기억해내고 그것을 소설로 옮긴 것인데, 작가가 풀어놓는 북한 사투리가 여간 맛깔스럽지 않다. 중국 여행을 떠난 소설 속 화자의 일행에 '꺼오뿌리'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가 끼어 있었다. '개차반' 또는 '개고기'라는 의미의 중국말 '꺼오뿌리(狗不理)'로 불리는 이 남자는 사실 흘러넘칠 정도로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 월남했던 그는 고향 가까운 곳에서 제사를 올리고 싶어 중국 여행에 오른 것이다. 화자와 함께 두만강에 가서 조촐한 시제(時祭)를 지내면서 북한 말로 토하는 꺼오뿌리의 부르짖음은 처절하면서도 향기롭다. "오마니, 아방께서두 생존해 계시갰지비? 금년으루 오마니 곁으 떠난 지 스를써 사십 년이나 훌쩍 지났슴메다. 황소 대가리두 얼어 떨어진다는 그 강추위에 오마니와 청진에서 작별으 앙이 했슴메까!"
단편 '아론'과 '미늘'도 작가의 오랜 주제 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쪽이다.
주인과 통정한 아내를 죽이고 자신이 키우는 침팬지 아론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는 하산의 이야기는 독특한 소재를 취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 주제는 작가가 인용한 19세기 생물학자 토마스 헉슬리의 경구와 다르지 않다.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시끄럽고 경박한 인간들보다 정직한 원숭이가 낫다.' 심부름센터 직원이 의뢰인의 청을 들어주다 살인죄를 뒤집어쓴다는 '미늘'도 현대 사회에 만연한 인간에 대한 불신을 다룬다는 점에서 계몽적이다. 오래된 듯 보이지만 그만큼 친숙하고 정겹게 보인다는 게 그의 소설의 한 힘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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