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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軍난맥상 창군이래 최대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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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軍난맥상 창군이래 최대 위기

입력
2002.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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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창군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사상 초유의 잇단 항명파동, 각종 기밀유출, 조직간 갈등, 정치권 줄대기, 진급로비와 이권개입 등 총체적 난맥상이 한꺼번에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군 관계자들도 "정권말기에 군이 흔들린 적이 있었지만 최근처럼 참담해 보기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잇단 항명파동에 폭탄 발언

지난달 국회 국방위에서 병풍사건을 둘러싸고 법무 장교들이 장관 앞에서 거의 '항명'에 가까운 대립을 보여 군 관계자들을 아연케 했다. 이때만해도 군 내에선 "군 법무 장교들은 상명하복의 전통이 약하다"며 애써 자위하는 모습이었다. 앞서 올 2월에는 공군의 모 대령이 차기전투기(F-X)사업에 국방부 수뇌부의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4일 국회 국방위의 국방부 국감에서 대북감청부대인 5679부대장 한철용 소장이 김동신 전 장관의 북한도발가능성 첩보 묵살의혹을 제기했을 땐 군은 경악했다. 존재 자체가 비밀인 5679부대의 한 소장은 수뇌부 앞에서 "장관이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지휘부에 충성하느니 차라리 전역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는 폭탄발언을 쏟아냈다.

때문에 그의 육사 1기 선배인 한나라당 강창희 의원은 "대한민국 국군이 큰일 났다"며 하극상을 나무란 뒤 국감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이를 지켜 본 한 위관 장교는 "군의 최고 혜택을 받은 장군이 조직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고, 군인의 길을 계속 걸어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잇단 기밀 유출에, 조직간 갈등

6.29 서해교전 후 군은 '작전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해군함정 배치 전술 등 각종 기밀과 정보를 본의 아니게 공개하는 바람에 작전이나 정보체계를 다시 정비하느라 큰 어려움을 겪었다. 군 관계자는 "대북 감청내용이 공개되면 북측에서 암호체계를 변경하기 때문에 정보기관이 이를 복구하는 데 최소한 6개월 이상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번 서해교전 전 북도발 가능성 보고 묵살의혹에서도 정보본부의 2인자인 한 소장이 북한 일일 정보보고서인 블랙북을 흔들어 보이는 등 각종 군기밀과 감청방법 등을 유출했다.

한 소장의 파문 와중에 군 조직간의 갈등도 하나 둘씩 불거져 나왔다. 한 장군과 권영재 정보본부장 사이의 갈등이 가감 없이 쏟아져 나왔고, 군 정보조직의 양대 주축인 5679부대(감청)와 정보사령부(영상) 관계자들이 올 4∼5월 감정싸움을 벌여 정보공유를 하지 않다가 처벌 받은 사실도 밝혀졌다.

대군(大軍)인 육군과 소군(小軍)인 해·공군이 예산배정과 자리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보이고 있는 갈등, 육군 내 출신·지역별 갈등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올초 육군이 공군 보직인 국방부 검찰단장을 차지하려 하자 공군이 거세게 반발하는가 하면, 무기구입 분야에 있어서도 육군이 주도해 해군과 공군의 불만이 쏟아지기도 했다.

■정치권 줄대기와 각종 로비

이뿐이 아니다. 정치권 줄대기는 군 진급 시즌이면 어김없이 군내에서 '설'로 떠돈다. 한 소장 파문 역시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군 일각의 해석. 군 관계자는 "한 소장의 묵살의혹 폭로는 지난해 진급 과정에서 탈락한 데 따른 불만에서 시작된 것이고, 그 진급 결정과정에는 여권 실세가 개입됐다는 설도 있다"고 전했다.

최근 장군 진급 인사를 앞두고 군내에선 이미 "누가 여권 실세에게 줄을 댔다"는 등 갖가지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

진급로비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악습. 최근 해군의 김모 대령이 진급을 위해 여권 실세와 절친하다고 주장하는 한 업자에게 3,000만원의 금품을 주고 진급을 청탁했다가 돈을 돌려 받은 사실이 밝혀져 징계를 받았다. 정치권과 군내 상급자에 대한 진급청탁, 각종 이권 개입과 뇌물수수 등으로 군복을 벗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軍 추락원인은

군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군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92년 김영삼 정권 집권 후 단행한 군내 최대 사조직 하나회의 숙청이 시발점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하나회 숙청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등 30년간 군부집권의 잔재인 군내 사조직을 척결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지만, 유능한 인재들을 무차별적으로 군문에서 쫓아냄으로써 군의 근간을 흔드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로 인해 군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하나회가 떠난 자리를 YS때는 PK출신들이, 김대중 정권 때는 호남 출신들이 메우면서 군 내에는 '지역감정'이라는 독버섯이 자라나고, 군이 정치화하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군의 한 관계자는 "진급인사 때마다 능력이 모자란 사람들이 출신지역 때문에 승진하는 경우가 많아 말이 끊이지 않았다"며 "더욱이 군 수뇌부가 정치권의 눈치보기에 급급, 일선에서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서해교전에서 우리 군이 북 경비정을 응징하지 못한 것도 군 수뇌부가 DJ 정권의 '햇볕정책'을 감안, 소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92년 개정된 군인사법으로 인한 인사적체와 군에 대한 투자부족 역시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중요한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육사출신의 경우 법령개정 전 임관 후 대령까지 16년 걸리던 것이 지금은 23년으로 늘어났다. 국방비 역시 최근 5년간 평균 증가율은 3.6%로 정부 재정증가율 9.8%에 비해 3분의 1수준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도 세계 평균수준 3.8%에 훨씬 못 미치는 2.8%에 불과하다.

한 군사전문가는 "최근 군의 혼란은 YS와 DJ가 군을 끌어 안기보다는 민주화를 해치는 집권의 걸림돌로 인식한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강조했다.

/권혁범기자

■개혁방법

군 안팎에서는 한철용 소장의 하극상 파동 등 일련의 혼란상이 군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군이 흔들리면 국가안보에 큰 구멍이 뚫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부는 대대적인 군 개혁 청사진을 발표하곤 했다. 중복 조직 정비, 인사비리 척결, 복지증진, 군별 갈등해소, 정치적 중립 방안 등.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개혁의지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정권말기가 되면 조직은 군내의 반발 등으로 오히려 확대되는 등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다. 현 정권도 초기 '국방개혁추진위원회'를 설치, 군 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으나 효과는 미미했다는 평이다.

국방부의 한 대령은 "최근 군복을 입고 밖에 나가기가 부끄럽다"며 " 군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스스로 군 개혁에 나서는 등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개혁으로 능력 위주의 공평한 인사와 철저한 신상필벌을 꼽았다. 그래야만 정치권 줄대기 같은 부조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군별, 출신별, 지역별 갈등도 원천적으로 방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사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주요 직책은 육군 출신들이, 그마저 육군 내에서는 육사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때문에 주요 사안을 두고 은연 중 심각한 갈등이 노출되고 있다. 중복된 조직의 과감한 정비도 시급한 사항이다.

물론 이 같은 개혁은 국민들의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학계의 한 군사전문가는 "21세기 전환기적 안보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선 군 내 개혁과 군의 자긍심 회복이 절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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