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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TK, PK, 그리고 MK

입력
2002.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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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공무원 기강이 흔들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이들은 조직의 위계질서를 깨고 직무상 기밀을 유출하는 행태에 대해 "다음 정권이 들어선 이후를 노린 정치권 줄대기"라고 비난한다. 또 어떤 이들은 "원천적으로 정권의 비리가 없어야지…"라고 정부의 잘못을 강조하며 내부고발자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다. 어느 쪽이 옳으냐를 따져보는 것도 흥미 있는 논쟁거리가 되겠으나 그러기에는 지금의 공무원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분열과 대립, 반목의 골이 너무 깊고 심각하다.국가정보원 군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을 비롯, 정부기관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대선이 끝난 후 엄청난 '인사태풍'이 닥쳐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때 자신의 출신지역, 출신학교, 그리고 정치적 성향에 부합하는 정권이 들어서면 그야말로 '벼락출세'하는 것이고, 그 반대일 경우는 다시 5년간 찬밥신세가 된다는 믿음이다. 지난 5년의 세월동안 자신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한직(閑職)에 맴돌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만회의 기회가 오고 있다며 칼을 갈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현재의 위치를 지켜보려고 안간 힘을 쓰기 마련이다. 이런 판에 아무리 공직기강 확립을 외쳐본들 영(令)이 설 턱이 없다.

오늘날 공무원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른 것도 따지고 보면 독재정권의 장기집권에 그 뿌리가 있다. 정권교체의 실현 가능성이 전무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기간 동안 출세의 길은 독재정권의 초법·탈법적 통치에 따라가는, 오직 한 방향에로의 충성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애당초 정치적 중립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지만,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조직과 기강이 만들어졌다. 호남 출신을 홀대하고 영남 출신을 우대하는 불평등 속에도 나름대로 인사기준에 따라 경쟁하고 또 순응해왔다. 그래서 각 기관마다 인사의 원칙이 자리 잡았고 그에 따라 예측 가능한 인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던 것이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달라졌다. "능력은 없는데 고향 잘 타고나 출세했다"는 말은 이미 그때부터 부쩍 들리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사회가 정권교체를 피부로 실감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김영삼씨는 1992년 대선을 앞두고 여권에 합류했고, 이 때 여권에 등장한 '친YS 인사'들이 후일 대거 요직에 올랐다. 상당수가 부산·경남 출신인 이들은 엄연히 현직 대통령이 있는데도 김영삼씨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셈이다. 정권교체를 앞두고 공무원의 기강이 무너지고 '정치권 줄대기'가 공공연해진 첫번째 사례다.

다시 5년이 지나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세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는 어땠을까. 일일이 예를 열거할 필요도 없이 '정치권 줄대기'의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그 대가라고 한다면 반발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현정권이 들어선 이후 호남 출신 인사들이 공직 사회에서 대거 약진했다. 이들 중에 과거 정권을 거치면서 주요 보직을 맡지 못해 실무경험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실제로 능력이 처지는 경우도 있어, 다른 지역 출신의 반발을 가져왔다.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그리고 MK(목포·광주)의 순(順)'으로 바뀐 것이다.

일이 이쯤 되면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공무원의 기강해이는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을 지난 10년간의 경험으로 깨달은 사람들에게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본분을 다하라고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현상태라면 5년이 지난 뒤 우리는 또다시 흔들리는 공직사회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집권하는 정치집단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스스로가 권력의 단맛을 절제하는 길 밖에 없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영 그럴 것 같지않아 보인다.

/신재민 논설위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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