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으로는 할 일을 다 했다는 홀가분한 기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43년 역사의 서울은행 간판을 내리게 돼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2000년 6월 누구도 꺼려했던 '골칫덩이' 서울은행을 맡아 2년 반 만에 하나은행으로의 매각을 성사시키고 이제 떠날 준비를 하는 강정원(姜正元·사진) 서울은행장의 표정은 다소 착잡해보였다. 서울은행의 가치를 크게 올려놓았는데도 이에 대한 평가보다는 오히려 감사원 감사 등으로 막판까지 시달려야 했던 강 행장의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2년 반이)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며 말문을 연 그는 "무엇보다도 주주가 만족하는 가격에 매각할 수 있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이 평가한 서울은행 가치는 1조1,500억원(주당 9,430원). 이는 작년 9월 도이체방크캐피탈파트너스(DBCP)가 제시했던 인수조건(주당 가격 5,000원+사후 손실보전)과 비교해 2배나 비싼 가격이다.
서울은행이 5년간 적자 끝에 이익을 내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재임 기간 중 부실자산 3조3,323억원을 정리, 순고정이하 부실여신비율이 하나은행(0.85%)은 물론 은행권에서 가장 낮은 0.66%로 떨어졌다. 충당금 적립 전 영업이익도 2000년 2·4분기 266억원에서 올 2·4분기 844억원으로 뛰었다. 취임 초 "서울은행을 부피만 큰 진공관 라디오에서 작고도 효율적인 트랜지스터형으로 바꾸겠다"던 그의 약속이 상당부분 이뤄진 셈이다.
강 행장은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각종 경영실적에서 제일은행을 따라잡았을 때"를 꼽았다. 직원들 사이에 자신감과 '다음 목표는 어디냐'는 도전의식이 충만해졌기 때문이다.
취임 후 무려 670명의 직원을 구조조정했던 강 행장은 정부와의 약속에 따라 또다시 합병은행 주총(11월10∼15일) 이전에 519명을 추가 감원해야 하는 '악역'을 맡아 노조와 힘겨운 협상에 들어갔다.
그는 하나은행측에 "편견을 갖지 말고 서울은행 직원들이 지난 2년 반 동안 이룬 것들을 인정해주고 잘 이끌어달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시티은행, 뱅커스트러스트, 도이체방크 등 20여년간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일했던 그는 "서울은행 경영이 한국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경영 이외의 일에 신경을 써야 하는) '감정적 소모'였다"고 말했다.
12월1일 서울은행 간판이 내려지면 그는 무슨 일을 시작할까. "쉬면서 천천히 생각하겠다"고 그는 말한다.
/글=남대희기자 dhnam@hk.co.kr 사진=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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