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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64)국민당 총재시절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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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64)국민당 총재시절 <18>

입력
2002.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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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7일 나는 청구동 자택으로 김종필(金鍾泌)씨를 찾아 갔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말로 대통령 선거에 나설 작정입니까." "뭐, 딱히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 나간다기보다 제1 야당을 만들어 나라에 기여하자는 뜻이지요." 역시 그는 정계 복귀는 물론 대선 출마까지 고려하고 있었다.나는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그렇다면 우리 당에 들어 와서 정치를 재개하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기꺼이 총재직을 내 놓고 백의종군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김종필씨는 내 말에 잠시 머뭇거렸다. 워낙 갑작스러운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좀더 시간을 갖고 연구해 보지요. 다음 주에 다시 만나 얘기합시다."

그날은 그렇게 얘기를 끝냈다. 김종필씨는 여전히 신당 창당 준비를 서둘렀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우리 당 의원들의 동요도 심해 졌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결론을 내야겠다는 생각에 22일 아침 다시 하얏트 호텔에서 김종필씨와 만났다.

"어차피 신당을 만들 바에야 그 신당과 국민당이 합당을 합시다. 합당 조건은 단 한가지, 현재 국민당 의원 중 지역구 출마를 바라는 사람에게 지구당 조직책을 보장해 달라는 겁니다. 그래야 나도 합당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설득할 명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평당원으로 백의종군할 테니 내게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김종필씨는 그러나 에둘러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국회의원 각자의 입장과 사정이 다를 테니 행동 통일을 할 게 아니라 개인 의사에 맡깁시다."

나는 김종필씨가 국민당 의원 다수가 자기 쪽으로 넘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당사로 돌아오면서 나는 결심했다. "이렇게 된 바에야 설사 혼자 남는 한이 있더라도 당을 지키겠다."

결국 12대 국회를 마감하는 10월 정기국회에서 우리 당 최재욱(崔在旭) 김용채(金鎔采) 김광수(金光洙) 의원 등 6명이 김종필씨의 신민주공화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와 함께 국민당의 원내 교섭단체 지위도 무너졌다.

비교섭단체로 전락하자 민정당에서도 우리 당 의원들에게 손을 뻗쳤다. 민정당은 다음 국회의원 선거 공천 보장을 미끼로 의원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나는 민정당의 입당 제의를 받고 고민하던 의원들이 내게 사실을 털어 놓고서야 그런 움직임을 알았다.

화가 치밀었다. 신민주공화당으로 옮긴 사람들은 그래도 과거 김종필씨와의 친분으로 보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 동요를 노려 의원 빼가기에 나선 집권당의 처사는 정의 도의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10월의 어느날 대한치과의사회 창립 총회 리셉션에서 노태우(盧泰愚) 대표를 만난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우리 당 의원을 빼가지 마시오." 노 대표는 의외로 철석같이 약속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중단시키겠습니다."

그러나 민정당과 당국의 집요한 공작은 그대로 계속됐다. 오래지 않아 8명의 의원이 민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5명의 의원도 끝까지 버티지는 못했다. 그들은 내 눈치만 보고 있다가 결국 내게 인간적인 양해를 구했다. "내년의 국회의원 선거를 생각하면 부득이 당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나는 그들을 막을 힘이 없었다. 차리리 마음이라도 편안하게 해 주는 게 낫다 싶었다. "내 걱정은 마십시오. 다음 선거를 생각해서 한 결정이니 그 뜻을 받아 들이겠습니다."

나는 완전히 외톨이가 됐다. 서글픔과 허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25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이때처럼 깊은 배신감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는 정치에 대한 배신감일 뿐이었고 떠나간 의원들의 사정과 심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국민당 총재이자 유일한 국회의원으로 1노 3김의 대선 각축전을 착잡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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