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權永吉) 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는 9일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총무 문창극·文昌克 중앙일보 이사) 초청 토론회에서 주한미군 철수, 토지 공개념제 도입 등 주요 정책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토론회에는 고종석(高宗錫) 한국일보 편집위원, 이목희(李穆熙) 대한매일 정치팀장, 박영균(朴永均) 동아일보 논설위원, 김영미 연합뉴스 여론매체부장, 김진석(金珍石) KBS 정치부 차장 등이 패널리스트로 참가했다.
● 노동운동가로서의 이미지 논란
―권영길 하면 머리띠 삭발투쟁이 떠오른다.
"동의한다. 소외 받고 억압 받는 노동자를 위해 일한 걸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최근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정책이 권 후보와 비슷해지는 측면이 있다. 노 후보가 연대를 요청하면 합칠 것인가.
"노 후보는 자신을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중도개혁이라고 했다. 그런 노 후보가 이 땅 진보세력을 대변해서 나온 나에게 연대를 제안하겠는가. 우리와의 차이를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또다시 갈팡질팡하는 후보라는 질타를 받을 것이다."
―'지금은 과격한 행동이 필요 없는 시대'라고 말한 적이 있다. 표를 얻기 위한 이미지 변신인가.
"김대중 정부는 지난 정권보다 더 노동자를 탄압했다. 농민에게도 마찬가지 행동을 하고 있다. 분명히 밝히건 데 지금은 과격한 행동이 없어질 상황은 아니다."
―권 후보는 진짜 노동자라기보다 인텔리 출신 노동운동가다. 민노당 후보로 떳떳한가.
"노동자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국한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나를 '노동운동가이지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 낮은 지지율과 당선가능성
―토론회 기회가 많아지면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으나, 아직도 1∼3%다.
"2번의 TV 토론회가 있었을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적 보도에서 민노당과 나의 활동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노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8%대의 지지를 받았다. 이번 대선 득표율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후보 개인에게 귀책 사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요즘 국민들이 민노당을 처음 알았고 정책을 보니 희망을 가졌다고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2기 민주노총 대표로 나설 당시 출마의 변을 통해 2020년에 가서야 진보정당이 집권할 수 있다고 봤다. 이번 대선의 최대 목표치는 어디인가.
"97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진보정당의 전도가 순탄치 않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민노당의 약진 등을 감안하면 10년 안에도 집권이 가능하다고 본다."
― 선거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계획인가.
"1만 명이 당비를 내 창당했다. 당원이 3만 명이다. 선거자금은 철저히 당원에 의존한다. 추가로 후원금과 특별당비를 모으면 40억∼50억원이 될 것이다. 그것으로 치를 수 있고 치르겠다."
● 민주노동당의 정체성 문제
―민노당의 정강을 보면 계급정당으로 보일 정도로 민중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이 민중이다. 민노당은 계급·계층의 연합당이다. 김대중 정권의 잘못으로 1,300만 노동자, 150만 빈민의 삶이 파괴됐다. 그 분들의 지지를 얻은 것은 곧 민노당이 대중적 정당임을 말해준다."
―권 후보는 그러나 토론회, 출마선언문 등에서 민중이라는 말을 안 쓴다. 표를 얻기 위해 말을 바꾸는 것 아닌가.
"표 때문에 용어를 안 쓰는 게 아니다. 민중이란 단어를 쓰면 '나를 제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농민들도 민중이라고 하면 '나는 제외된 것 아닌가'라고 생각을 한다."
―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는 국가가 공유한다고 밝힌 강령이 사유재산을 인정한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과 배치되는 것 아닌가.
"싱가포르는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의 국유화제를, 대만도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토지 공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토지를 전부 국유화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 집권하더라도 원내에 의석이 없으니 법을 개정하기도 어렵지 않나.
"지금 눈앞에서 이 당 저 당 왔다 갔다 하면서 몇 십명 씩 모여 창당을 한다고 한다. 내가 당선되면 의원 200명 중 3분의 1은 금새 몰려올 것이다."
― 민노당은 조선노동당을 파트너라고 보는가.
"평화와 통일을 위해 대화와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 민노당은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한마디로 규정한 적이 없다. 사회주의의 장점을 취하고 시장경제 지상주의의 병폐를 척결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 주한미군 철수 등 안보 현안
―남북한 군사력을 줄여야 한다고 보나.
"전력 손실이 없이 병력을 감축할 수 있다. 그래서 20만 감축을 주장한다. 지금 단계에서 더 중요한 것은 남북간의 군사적 신뢰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선행 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징병제를 모병제로 고치겠다."
― 시기별로 미군 철수에 대한 견해가 다르지 않았나.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위해 상호방위조약과 주둔지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 한미 방위조약처럼 무기한인 조약도 없다. 더욱이 우리는 미군으로부터 기지사용료를 받기는 고사하고 매년 4억2,000만 달러씩 지원하고 있다."
― 주한미군은 북한의 전쟁 억지를 위해 주둔하고 있는 것 아닌가.
"주한 미군의 1차적 주둔 목적은 중국에 대한 억지로 보고 있다."
―현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견해는.
"김 대통령은 남북 교류에만 중점을 뒀지 군사적 문제 등 평화공존이라는 핵심에 접근하지 않았다. 금강산 관광을 하고 있는데 서해에서는 교전이 있었다. 또 현 정부의 대북 지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재벌을 내세웠다는 부분이다. 대북지원은 공적 논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산업은행의 현대상선 지원 등이 문제되는 것도 재벌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해 대북지원을 위한 공적기구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 개인 신상 문제
― 월급을 받지 못하는데 생활비와 활동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아파트 담보, 어머니 계신 집을 전세 놓아 생활비로 쓰고 있다. 민노당과 보수정당의 차이가 이런 것이다. 민노당 후보의 저녁 값은 당원들이 평등하게 낸다. 전국을 돌아다녀도 활동비 없이 자발적으로 부담한다."
― 전세지만 강남에서 사는데.
"파리 특파원을 할 때 기자아파트를 하나 건졌고, 돌아와서 옆집으로 이사했다. 서민도 강남에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강연, 원고비가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된다."
―처가가 동방생명이고 거의 재벌급이었는데 도움을 받았나.
"삼성이 인수하기 전에는 분명히 그룹이고 재벌이었다. 장인이 살아계셨으면 결혼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인 사후) 몫을 챙기지 못했고, 극단적으로는 망한 것이다. 갖고 있는 것을 다 털린 상황에서 집사람과 결혼했다."
―미국에 있는 딸 부부가 동성동본이어서 반대했다고 하는데.
"반대했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내가 진보주의자라면 동의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세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실패하면 다음에 출마 않겠다고 했다. 다시 출마할 의향이 있나.
"내가 당선 가능성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실패하더라도 다른 당처럼 이합집산하고 흩어지지 않는다. 보수정당과 다른 점이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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