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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國基 문란"과 "우리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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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國基 문란"과 "우리는 하나"

입력
2002.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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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구경하기가 어지럽다. 나라 안부터 서울과 부산이 사뭇 딴 나라 같다. 서울에서는 북한에 몰래 4억 달러를 쥐어 준 의혹을 놓고 살벌하게 다투는 사이, 저 아래 부산에서는 북한 선수와 응원단을 둘러싸고 '우리는 하나'라고 뜨겁게 외치는 감동을 연출한다.나라 바깥도 돌아가는 꼴이 예사롭지 않다. 북한이 적대하던 일본 미국과 완고한 벽을 허무는 대화에 나선 반면, 피로 맺었다던 형제국 중국은 거꾸로 신의주 특구 장관 양빈을 연금해 김정일 위원장의 대외 개방 행보에 딴죽을 걸었다.

혼란의 소용돌이를 넋 놓고 들여다보다가는 어지럼증만 더하기 십상이다. 이럴 때는 한 발짝 물러서서 보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 시각에는 북한 미녀 응원단을 인기 짱으로 띄운 부산의 '작은 통일'에 감격하는 사회가 북한에 뒷돈 준 의혹을 '국기 문란'으로 떠드는 것이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

국민 다수가 의혹을 사실로 여긴다는 여론조사도 있으니, 실제로 뒷돈을 주었다고 치자. 국민 돈을 몰래 축 낸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게 평화를 위한 충정에서 비롯됐다면 달리 볼 필요가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명분이 뚜렷하다면, 곁가지 하자(瑕疵)로 여길 만 하다는 얘기다.

햇볕정책도 국민적 합의와 투명성이 필수라는 이들은 무슨 궤변이냐고 외칠 것이다. 그러나 적대국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대타협이 온전한 국민적 합의와 투명한 과정을 거친 사례가 얼마나 있는지 되묻고 싶다. 특히 왜곡되고 위선적인 북한 인식이 뿌리깊은 사회에서 그런 합의와 투명성에 마냥 집착하는 것이 능사일지 의문이다.

진부하나 여전히 교훈적인 독일의 경험을 다시 살피자. 옛 서독은 동독 고립을 노린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면서 갖가지 명목으로 동독에 막대한 현금과 차관을 제공했다. 동독 지원의 큰 몫은 서독 이주 희망자와 탈주 실패자 등을 넘겨 받는 대가였고, 한해 몇 억 달러씩이나 됐다.

긴장 완화와 동족의 자유를 돈 주고 산 이 거래는 대부분 은밀하게 이뤄졌다. 동독이 갑자기 서독이주 허가를 늘리거나, 국경의 탈출저지용 자동발사총을 철거하는 등의 유화조치를 취한 이면에는 늘 뒷돈 거래가 있었다. 그게 동서독 모두에게 편리한 때문이었다.

서독 사회에서도 논란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동독에 남은 동포를 돌보는 것이 도리이고, 동독이 그 돈으로 안정을 유지해야 체제 민주화의 여지가 넓어진다는 것이 국민적 합의였다. 특히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교류를 통해 상황을 유동적으로 이끌어야, 분단 고착을 막을 수 있다는 전략적 목표 인식이 뚜렷했다.

우리 사회가 이런 합의와 인식이 부족한 것을 아쉬워 하기는커녕, 그나마 이룬 결실마저 외면한 채 나라의 근본이 흔들렸다고 떠들일은 아니다. 남북 정상회담이든 금강산 관광이든 북한 미녀 응원단이든 간에, 민족 화해의 감동은 즐기면서 투명성과 시장경제원칙 등을 내세워 시비하는 것은 파티는 공짜로 즐긴 다음 숙취를 탓하는 행태와 같은 꼴이다.

눈을 바깥으로 돌려 멀리 내다봐야 한다. 신의주 특구와 양빈 파문은 북한의 격변과 함께 주변국의 치열한 이익 다툼을 예고한다. 북한은 체제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땅 팔기'에 나섰고, 중국은 이를 간파하고 통제에 나섰다는 분석마저 나오는 판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지원방법을 놓고 마냥 논란하는 것은 한가하다. 이제는 '북한 관리'를 생각할 때다.

강병태 편집국 부국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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