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최고(最古)의 유랑극단 동춘서커스단이 전용극장을 갖는다. 동춘서커스단은 내달 초 부천시와 함께 경기 부천시 상동에 국내 최초의 서커스 상설공연장 건설에 들어가 2004년 3월 완공한다.지난달 19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박세환(朴世煥·59) 단장은 9일 "트럭을 스무 대씩 끌고 농번기와 장마, 추위에 아랑곳 없이 방방곡곡을 떠돌며 살아온 30년 세월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며 "이제 국제적인 수준의 서커스단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동춘서커스단은 일본서커스단에서 활동하던 고 박동수(호 동춘)씨가 1925년 조선인을 모아 전남 목포에 설립했던 국내 최초의 서커스단으로 허장강, 서영춘, 남철, 남성남 등의 대스타들을 배출했다. 박동수씨의 양아들인 박 단장은 고1 때인 61년 가수가 되기 위해 입단, 노래, 캉캉춤, 공중곡예까지 익혔고, 빼어난 외모와 말솜씨로 만담꾼과 사회자로 활동했다. MBC 탤런트 공채 2기이기도 한 박 단장은 "당시 서커스는 연극과 쇼, 악극, 곡예가 어우러진 국내 대중문화의 총아였다"며 "TV는 2·3류들만 가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72년 TV드라마'여로'가 방영되면서 '거리의 예술'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15개 남짓 하던 서커스단도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79년 태풍에 유실됐고 81년에는 서커스단의 마스코트였던 코끼리 '제니'가 혹한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270명이 넘었던 단원은 대부분이 유흥업소로 가버려 현재 30명 정도가 남았다. 박 단장은 지난 해엔 러시아에서 공연했으며,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서커스 장면을 협연하면서 쇠락한 서커스단의 활로를 모색해 왔다.
상설 공연장에선 풍물, 남사당묘기, 마당극을 흡수해 외국 관광객을 적극 유치할 계획이다. 아직까지 주말이면 마이크를 잡고 사회자로 나서는 박 단장은 최근 수도권 일대 공연에서 적잖이 인기를 끌어 가슴이 부풀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자 손녀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이 서커스 말고 또 있을까요."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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