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10개 국의 유럽연합(EU) 가입이 사실상 확정됐다. 이로써 EU는 25개 국에 인구 4억 5,000만 명을 거느린 최대 단일 시장으로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아시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동(東)으로 동으로
EU 집행위원회는 9일 1998년 이후 신규 가입 협상을 해 온 13개 국의 가입 자격에 대한 최종 보고서인 '확장된 연합을 향해'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베니아, 키프로스, 몰타,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10개 국이 차기 가입국 지위를 공식 인정받아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EU 정상회담에 초청됐다. EU 집행위는 새 회원국이 2004년 6월 실시하는 유럽의회 선거에 참가할 수 있도록 올 말까지 가입 협상을 마무리하고 늦어도 내년 봄까지는 가입 조약 서명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보고서는 이 10개 국이 사형제 폐지 등 사법 개혁 인권문제 해결 시장경제 도입을 비롯한 경제 개혁 등 EU가 내건 가입 조건들을 충족시켰다고 밝혔다. 반면 경제 개혁이 미진한 것으로 나타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 대해서는 협상은 계속하되 가입을 유보키로 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그동안 가입 후보에서 제외돼 온 이 2개 국에 대해 "2007년에는 가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최초로 명시, 동진(東進) 의지를 명확히 했다.
■터키의 반발
99년 공식 가입 후보국으로 인정된 터키는 추후 가입 협상 일정도 통보받지 못해 사실상 가입을 거부당했다. 보고서는 "7월말 연정 붕괴로 11월초 조기 총선을 실시키로 하는 등 정치적인 불안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터키는 8월 사형제 폐지와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 인권 문제 개선을 골자로 하는 민주개혁법을 통과시키는 등 EU의 눈에 들기 위해 애써 왔다.
수쿠루 시나 구렐 터키 외무 장관은 9일 "EU와의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EU 신속대응군의 2003년 완전 가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자국의 동의가 필요하고 대 테러전에 참가한 공로로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는 점을 이용, 12월 정상회담 때 협상 재개 약속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보고서도 2006년까지 터키에 대한 재정 지원을 2배로 늘릴 것을 제안, 가입 여지를 남겨두었다.
■밝지만은 않은 미래
영국, 독일 등 회원국들은 보고서에 대해 "진정한 유럽의 통합" "유럽의 시대"라며 환영 논평을 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빈곤국이 대부분인 새 회원국들로 인한 EU 경제의 하향 평준화와 저임 노동자 유입, 경제 지원금 삭감 등 자국 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우려하는 분위기이다. 집행위 조사에 따르면 2004년 새 회원국의 제도 정비 등으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가입 후 3년 간 25억 유로(3조 2,000억원)를 넘어선다.
19일 아일랜드의 니스 조약 승인에 대한 국민 투표는 EU 확장의 첫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2000년 12월 작성된 니스 조약은 유럽의회 의석 확대, 신·구 가입국 간 협력안 등 새 회원국에 대한 지원 방침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나머지 14개국의 승인을 받았다. 지난해 6월에 이어 아일랜드에서 또다시 승인이 거부돼 발효되지 못하면 앞으로 10개 국 가입 일정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 91년 소련 붕괴 이전 옛 '안마당'이었던 동유럽 국가들을 EU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러시아와의 충돌도 EU의 고민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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