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혼한 조형미를 지닌 고구려 벽화는 한국의 대표적 벽화다. 신라와 백제, 고려의 벽화 고분도 몇 기(基) 전하고 있으나, 고구려 벽화고분은 40여기에 이른다. 고구려 벽화는 일월성수 등 그들의 우주관을 나타내기도 하며 오락·수렵·전투 등 일상생활을 그린 풍속도, 인물화 등 다양하다. 벽화는 당시의 음악·미술 등의 문화와 종교·신앙 등 정신적 비밀까지 들려 준다. 고구려 벽화는 일본 벽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현대 우리 미술의 한 중요한 원형을 이루고 있다.■ 고구려 벽화고분은 모두 북한과 만주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없는 점이 안타깝다. 국토가 분단되기 전에는 달랐다. 고구려 벽화는 특히 최영림(작고) 황유엽 등 어린 시절 고분을 보며 성장한 북한출신의 뛰어난 서양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최영림 그림의 흙벽 같은 바탕 질감 위로 흐르는 천진성과 관능미, 황유엽 그림의 특징을 이룬 토속성과 향수의 진한 분위기는 시대를 아득히 거슬러 올라 고구려 벽화에 가 닿는다. 화가들도 이 점을 자연스럽게 자랑하고 있다.
■ 고구려의 새로운 고분 벽화가 1,6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 화제가 되고 있다. 5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황해북도 연탄군 송죽리 고구려 고분의 벽화 사진 6점이 공개된 것이다. 벽화 사진에는 인물과 동물, 사냥장면 등이 들어 있다. 훼손이 심한 편이나 호랑이는 큰 눈이 부리부리하며, 흰개와 누렁개의 형체는 뚜렷하다. 말 고삐를 쥔 여성은 얼굴과 손의 살결이 분홍빛으로 체온까지 전해 올 듯하다. 까만 눈썹과 눈동자, 붉은 입술의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며, 허리는 급격한 곡선을 그리며 잘록해져 점잖음 속에 숨겨진 관능미를 드러내고 있다.
■ 1,600년전 고구려여인은 부산에서 아시안게임을 응원하는 북녀들처럼 예쁘고 다정다감해 보인다. 북한 학자들도 근래 이 벽화 같이 다양한 주제의 화려한 벽화가 그려진 고분이 발굴되기는 처음이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이 벽화들이 아시안게임이 벌어지는 부산의 세미나에서 북한학자와 공동 발굴한 일본 학자를 통해 남한에 공개된 것은 꽤 이례적이다. 남북 학자들의 오랜 숙원이던 남북 고고학 교류와 유적 공동조사에 한 가닥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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