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네요. 아직도 악몽을 꾸는 것 같습니다."영화 관련 일을 하는 박모(39·여·경기 남양주시)씨가 처음 카드대출을 받은 것은 2000년 초. 직업 성격상 수입이 일정치 않은 데다 프리랜서 작가인 남편의 수입도 신통치 않아 가끔 100만∼200만원의 현금서비스를 받아 생활비로 충당했다. 수입은 뻔한데 중학생인 아들(14)의 과외비 등으로 지출이 늘어나면서 돈 빌려 쓰는 횟수는 자연히 증가했다. 제때 결제일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습관처럼 이 카드, 저 카드에서 돈을 빌려 쓰면서 속칭 '돌려막기'에 빠지게 됐다. 모든 카드는 결제일을 각기 달리 설정해 A카드의 현금서비스 결제일이 돌아오면 B카드에서 빌려 막고, C카드가 돌아오면 D카드로 막는 식으로 돈을 썼다. 이렇게 쓴 카드 빚 잔액이 연체료까지 합해 지난해말 무려 5,00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관련기사 3면
이자부담을 도저히 견디지 못해 올해 초엔 결혼 10년 만에 분양받은 남양주의 33평형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돈을 빌려 카드빚의 절반가량을 갚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남편과의 불화가 싹텄고 둘은 결국 빚 때문에 합의이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서울 명동 센트럴빌딩 7층 신용회복지원위원회. 1일부터 개인워크아웃 상담을 받고 있는 이곳엔 요즘 "빚 때문에 못살겠으니 탕감해달라"는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다. 하루 평균 500∼600건씩 폭주하는 상담문의로 안내전화는 하루 온종일 통화중이다.
가계 발(發) 신용위기가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 상황 속에서 마구잡이로 은행 돈을 빌려 쓴 서민들이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가계파산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9일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9월말 은행 가계대출 연체율은 1.56%로 6월말의 1.24%에 비해 0.32%포인트(26%)나 늘었다. 은행 신용카드 연체율도 지난해말 7.38%를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증가, 9월말에는 11.19%로 급증했다. 연체율이 이 같은 속도로 증가하고, 향후 경기마저 침체국면으로 접어든다면 조만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신용위기가 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은행과 신용카드사 등 제2금융권의 가계 대출 충당금 적립기준을 대폭 상향 조정하고, 주택담보율 인하(60%)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가계대출억제대책을 11일께 발표할 예정이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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