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대표주들마저 와르르 무너지다니…"코스닥 지수가 사상최저치로 추락한 9일 증권사 객장에서는 "옥석(玉石)이 따로 없다"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우량주와 부실 저가주 할 것 없이 온통 파란색으로 물든 코스닥 시세판을 맥없이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얼굴에는 "올 것이 왔다"는 체념이 팽배했다.
그동안 지수가 몇일째 사상 최저점까지 근접하면서 '매매 포기' 상태를 보였던 투자자들은 이제 반등기대조차 접은 상태다.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이 30만원을 웃돌던 옛 '영화(榮華)'는 간 곳 없고 허탈과 뼈아픈 후회만 남았다.
■벤처 꿈의 몰락
한국의 벤처 붐을 이끌며 '대박의 상징'이었던 코스닥시장이 역사상 최저점을 기록하며 무너졌다. 코스닥 붕괴는 외국인 매도에다 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던 우량주들마저 손절매(loss-cut)한 것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휴맥스 LG홈쇼핑 엔씨소프트 등 대장주들 가운데서도 5% 넘게 폭락한 종목이 속출했다. 거래량과 거래대금은 2억1,987만주와 5,334억원에 불과했다. 내린 종목은 하한가 14개를 포함해 531개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2001년 1월 71조원을 넘던 코스닥 시가총액은 1년 반만에 절반에도 못미치는 38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거품이 만든 뻥튀기 주가
1996년 7월1일 지수 100으로 출발한 코스닥시장은 외환위기를 넘기고 현 정부가 벤처 지원정책을 펼치면서 가파르게 올라 2000년 3월10일에는 종가기준으로 283.84까지 치솟았다. 액면가 500원짜리인 다음은 99년 12월28일 38만6,500원까지 치솟아 거래소 종목 액면가 5,000원으로 환산하면 386만5,000원이나 됐다. 개인투자자들이 돈다발을 들고 몰려들면서 코스닥 거래대금은 2000년 2월14일 6조4,211억원에 이르렀다.
코스닥에 등록만 하면 '한 몫' 잡을 수 있다는 환상으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98년말 350개였던 종목수는 2000년 말 619개로 불어났고 8일 현재 834개에 이르렀다.
■각종 비리와 기업부실
코스닥 시장을 겉으로 붕괴시킨 것은 세계적인 정보기술(IT)경기 부진에 따른 신경제의 몰락이지만, 안으로 곪게 만든 것은 각종 '게이트'로 상징되는 주가조작과 불공정거래, 코스닥 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다. 코스닥 기업들은 업체 난립에 따른 경쟁과열과 IT경기 부진으로 극심한 수익악화를 겪어왔다.
거품을 쫓아갔던 비이성적 '투기광풍'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김석중 상무는 "세계적으로 철도·자동차·전기 등 새로운 운송수단과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항상 거품이 생겼고 90년대 후반 인터넷의 출현도 예외가 아니었다"며 "최근의 주가하락은 거품을 걷어내고 시장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고 있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더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사상 최저치 추락에도 불구하고 코스닥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업종의 코스닥 종목이 거래소 종목보다 고평가돼 있는 등 거품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99년 이후 코스닥시장에 대량으로 들어왔던 기업들의 공모자금이 거의 바닥난 상태인데다 이익은 나지 않고 있어 도산 기업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대증권 류용석 연구원은 "기술주 이외에 홈쇼핑·금융 등 그동안 비교적 튼튼했던 내수관련 우량주들도 가계부채 급증, 부동산 버블 등에 대한 우려감으로 하락하고 있다"며 "현재로서 코스닥에 대한 전망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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