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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서 되새겨본 삶·시간/배한봉 시집 "우포늪 왁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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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서 되새겨본 삶·시간/배한봉 시집 "우포늪 왁새"

입력
2002.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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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배한봉(40·사진)씨가 서울을 떠나 경남 창녕 우포늪가에 둥지를 튼 지 3년째다. 1억 4,000만 년 전 한반도와 함께 태어난 습지. 희귀 식물과 곤충, 조류, 어류 등 1,000여 종의 생명이 몸을 부비면서 다정하게 살고 있는 곳. 배씨가 우포늪에서 쓴 시 56편을 모아 두번째 시집 '우포늪 왁새'(시와시학사 발행)를 펴냈다.1억년의 시간이 고인 늪이라니! 하루를, 한 시간을, 혹은 1분을 다투는 서울에서 반나절만 가면 한 시인이 늪가에서 책을 읽고 있다. 그는 시간을 버리고 더 큰 시간을 얻었다. 이제 그에게는 시간의 화석을 만질 수 있는 축복이 쏟아진다. '나는 지금 1억 년 전의 사서(史書)를 읽고 있다/ 빗방울은 대지에 스며들 뿐만 아니라/ 돌 속에 북두칠성을 박아놓고 우주의 거리를 잰다'('빗방울 화석'에서)

득음을 구하며 시골장을 떠돌던 소리꾼이 우포늪에 다다랐다. 시인은 '필생 동안 그가 찾아 헤맸던 소리가/ 적막한 늪 뒷산 솔바람 맑은 가락 속에 있었던가'라며, 늪에서 터져나온 소리가 왁새(왜가리의 별명) 울음처럼 깃을 치고 날아올라 '우포늪 꽃잔치를 자지러지도록 무르익힌다'고 말한다('우포늪 왁새'에서).

시에 나오는 소리꾼처럼 시인 스스로도 우포늪에서 '고통의 위력은/ 쓸개 빠진 삶을 철들게 하고/ 세상 보는 눈을 뜨게 한다'는 그 단순한 가르침이 어째서 지금껏 마음을 적시지 못했는지 깨닫는다. 고통이 베풀어준 그늘이 따뜻하다는 것을 우포늪이 알려줬다. '외로움도 매운맛이 박혀야 알뿌리가 생기고/ 삶도 그 외로움 품을 줄 안다/ 마침내 그는/ 그늘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늘을 가진 사람'에서)

배씨는 1998년 월간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을 받고 등단, 첫 시집 '흑조'를 냈다. 그의 두번째 시집은 온전하게 시인의 것이다. 평론가의 해설도, 문우의 발문도 없다. 순수하게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시와시학사는 앞으로 출간하는 시집에 이렇게 시인의 목소리만 담겠다고 밝혔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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