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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가야산/佛心만큼이나 깊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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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가야산/佛心만큼이나 깊은 가을…

입력
2002.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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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에 큰 사찰이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절, 해인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절일 뿐만 아니라 '3보 사찰' 중의 하나다. 덕이 큰 고승을 많이 배출한 승보사찰 송광사(전남 순천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는 불보사찰 통도사(경남 양산시), 그리고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사찰 해인사(경남 합천군)가 3보 사찰이다.

가야산(해발 1,433m)은 그래서 산 자체 보다 불교적 분위기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산 이름부터 부처가 설법을 했던 산, 가야산에서 빌어왔다. 그러나 옛날부터 조선 8경에 꼽혔던 아름다운 산이다. 화재, 수재, 풍재의 3재를 겪지 않을 만큼 기세가 출중한 산이기도 하다. 실제로 오대산, 소백산과 함께 왜적의 침입을 받지 않은 산으로 유명하다.

8부 능선까지는 흙을 밟고 오르는 육산이지만 그 위로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힘들 정도의 돌산이다. 아기자기한 산행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추색이 으뜸이다. 관광객이 대규모로 왕래하는 해인사를 벗어나 위로 오르면 가야산의 가을을 만끽할 수있다.

가야산의 최고봉은 상왕봉(1,430m)이었다.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봉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인근 칠불봉이 약 3m 더 높은 것으로 측량돼 앞으로 만들어지는 지도에는 칠불봉이 가야산의 주봉으로 기록될 것이라 한다.

주차장에서 해인사까지는 약 10분. 차가 다니는 포장도로와 사람이 다니는 흙길을 구분해 놓았다. 예전에 절 앞에 있던 노점을 모두 철수시켜 분위기는 깔끔하다. 해인사 일주문을 지나면 잘 다듬어진 산행로가 나타난다. 사람들에게 치이지도 않는다.

길은 평탄하다. 옆으로 제법 규모가 있는 계곡이 함께 한다. 홍류동계곡이다. 물은 마구 떠먹어도 좋을 만큼 깨끗하다. 굽이굽이 폭포와 소를 만들며 흐른다. 약 2㎞. 길 자체는 변화가 별로 없지만 계곡물과 함께 하는 산행은 지루하지 않다. 산길이 계곡과 멀어지면서 조금 가팔라진다. 그러나 아직 힘들지는 않다. 대나무, 잣나무와 함께 온갖 아름드리 나무들이 길을 호위한다.

8부 능선에 있는 헬기장을 지나면 산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온통 바위 투성이이다. 나무는 어깨 아래의 관목으로 바뀌고, 그나마 단단한 바위를 피해 듬성듬성 나 있다. 가을의 햇살을 기분좋게 맞으면서 돌길을 오른다. 약 30분. 바위 봉우리를 이리 저리 우회하며 나 있던 길이 넓은 광장에 닿는다. 9부 능선이다. 시야가 확 열린다. 위로는 상왕봉과 칠불봉이 우뚝 서 있고, 아래로는 나무가 빽빽한 능선이 펼쳐진다.

마지막 5분의 산행으로 상왕봉에 선다. 상왕봉까지의 길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기어오르는 길이다. 가파른 최종 구간은 계단으로 이어 놓았다. 사람들의 발길에 닦여 바윗길이 반질반질하다.

북으로는 덕유산, 서쪽으로는 지리산 자락이 보인다. 거대한 산자락들이다. 가야산의 다른 봉우리들도 기세를 자랑한다. 짐승의 이빨 같은 바위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발 아래를 내려다 본다. 색깔의 향연이다. 8부 능선에서 정상까지는 제법 단풍이 들었다. 그 아래로는 아직 푸르름이다.

봄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고, 가을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가야산의 꼭대기에 서면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읽을 수 있다.

/합천=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길은 어렵지 않다. 대구와 광주를 잇는 88고속도로의 해인사 IC에서 빠지면 된다. 수도권에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에서 88고속도로를 갈아타거나, 대전-진주 고속도로를 타다가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진입하면 된다. 무주에서 빠져 국도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난 수해로 길이 많이 망가져서 불편하다. 서울에서 약 4시간30분. 합천을 포함해 인근의 거창, 남원, 안의 등에서 시외버스가 해인사까지 수시로 다닌다. 국립공원 가야산관리사무소 (055)932-7810

▶해인사관광호텔(055-933-2000)이 대표적인 숙소다. 근처에 먹거리촌이 형성돼 있어 밥먹기에도 큰 불편이 없다. 조금 독특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산장별장(932-7245)을 이용하면 된다. 온돌방에 화장실(샤워 가능)을 갖춘 소박한 곳으로 방 앞에 마루가 길게 드리워져 있어 시골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해인사 인근과 백운동 지구에 장급 여관이 많고 대부분의 식당에서 민박을 친다. 단풍철에는 여관과 민박의 가격이 두배까지 껑충 뛴다.

▶유명한 관광지일수록 먹거리에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단체 관광객을 맞는 '단체음식'이 대종을 이루기 때문이다. 해인사 주변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비싸다. 1인분을 기준으로 평균보다 약 2,000원 정도 비싸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가야산 자락의 나물을 재료로 한 산채 음식. 홍도식당(055-932-7368), 백운장식당(932-7393) 등이 유명하다. 표고버섯을 재료로 한 표고정식도 먹을 만하다. 마산식당(932-7271) 등에서 맛볼 수 있다.

● 오르는 길

가야산 등산은 산행이라기보다 여행이다. 그만큼 산에 오르며 볼 것이 많다. 해인사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거의 정상까지 암자와 석불 등이 흩어져 있다.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

가야산 등산로 입구는 두 곳. 홍류동 집단시설지구와 백운동 집단시설지구이다. 대부분 홍류동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른 후 마애불상 쪽으로 하산길을 택해 다시 홍류동으로 내려오는 원점 회귀 산행을 한다. 왕복 약 9㎞로 5시간 정도 걸린다.

홍류동에서 출발해 백운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도 인기가 높다. 상왕봉, 칠불봉을 차례차례 오르고 서성재를 거치는 아기자기한 등산로이다.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백운동으로 하산하는 길은 가파르다. 승용차를 가지고 갔다면 다시 홍류동으로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가야산은 등산로 초입이 거의 평지나 다름없기 때문에 산행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갈수록 경사가 심해진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코를 산자락에 대고 네발로 기어오르는 거친 바위 코스이다. 등산화 등 장비가 부실하다면 8부 능선 쯤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좋다.

가벼운 산책만으로 만족한다면 보장교와 선유교 사이에 조성된 1.6㎞의 자연관찰로를 택한다. 종합해설판, 생태해설판, 수목표찰 등으로 가야산의 자연을 설명한다. 관찰로 주변 군데군데 휴식공간도 마련돼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독특한 모습의 성철 큰스님 사리탑, 성보박물관 등 해인사의 모든 것을 구석구석 찾아보는 것도 빼놓지 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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