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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대선구도 빨리 확정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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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대선구도 빨리 확정돼야

입력
2002.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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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는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갖고 투표해야 한다. 이는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실천하기 쉽지 않은 이상(理想)이다. 많은 경우, 유권자는 일시적 사회분위기에 편승하거나 압도되어 표를 던진다.각 후보자의 실체가 피상적 인상, 또는 신화적 믿음과 같은 소위 '정치적 거품'에 덮여 눈을 가리고 있어 유권자는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이런 문제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또 완전히 사라지기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노력으로 그 문제의 심각한 정도를 다소라도 낮출 수는 있다. 만약 대선 구도가 빨리 확정된다면, 즉 어느 당의 어느 후보끼리 경쟁하는지 투표해야 할 대상이 좀 더 일찍 확정된다면, 유권자는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후보자들을 살펴볼 수 있다. 유권자의 숙고와 평가 기간이 길수록 일시적 거품이 사라질 수 있다. 유권자가 합리성을 발휘해 선택을 할 여지가 커지는 것이다.

대선 구도가 일찍 결정되는 예로 미국을 들 수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 당의 대선 후보가 공식적으로 결정되는 전당대회는 통상 7, 8월에 열린다. 11월 선거보다 3개월 정도 앞서 공식적인 대선구도가 확정되는 것이다. 그 자체로는 과히 일찍 정해진다고 말할 수 없지만, 실제의 대선 형태는 그 보다 몇 달 이전에 분명해진다. 예비선거 덕택이다. 1월부터 6월 사이에 각 주별로 실시되는 예비선거는 대략 3, 4월이면 판세가 결정된다. 따라서 늦어도 5월초엔 양당 후보간에 뚜렷한 대선구도가 잡혀 투표까지 이어진다.

6개월 정도 대선구도가 지속되므로 미국 유권자는 그만큼 유리하다.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고, 보다 신중한 판단을 할 수 있다. 거품 섞인 일시적 사회 분위기로부터 영향 받을 우려도 비교적 적다. 유권자뿐 아니라, 정책 현안에 대한 입장을 진지하게 정립해야 하는 각 후보 진영에도 대선구도의 긴 지속이 좋다. 여론의 추이를 살펴가며 현안을 상정하고 공약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집권 후 정책노선을 급조 한다거나, 대충 만들어 선언했던 공약에 의해 발목을 잡히는 일이 적다. 이미 긴 선거기간 과정에서 정책노선에 대한 충분한 계산과 입장을 정립할 수 있었던 덕택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아직도 자욱한 안개 속에 대선구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지 않다. 2강 구도일지 3강 구도일지, 2강 구도라면 누구와 누구의 대결일지, 누구와 누가 언제 후보 단일화를 이룰 지, 어떤 식으로 헤쳐모여 신당이 창당될 지 등 많은 의문에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11월 10일께야 반(反) 이회창 단일후보가 확정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2월 19일의 대선까지 40여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대선구도를 확정 짓겠다니,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숙고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는 애당초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하기야 대선 승리에만 집착하는 정치인들로서는 대선구도의 확정을 최대한 늦춰 유권자의 냉철한 판단을 방해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새 후보가 나오거나 신당이 창당되는 등 대선구도가 변화할 경우, 그 직후에는 일시적으로 사회분위기가 특정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런 들뜬 분위기에 시점을 맞춰 선거를 해야 승산 있다는 전략적 계산이 대선구도의 조기 확정을 막고 있을지 모른다.

정치인들의 승리지상주의 전략에 의해 유권자가 희생되면 안된다. 유권자는 각 후보와 그 후보의 정당에 대해 신중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시민으로서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이를 위해 대선구도가 하루빨리 확정돼서 유권자가 충분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제라도 정치인들은 유권자를 우선시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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