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반란이었다. 만년 2인자들이 흘린 땀과 눈물은 한데 뭉쳐 만리장성을 허무는 격랑이 되었다.석은미(26·현대백화점)와 이은실(26·삼성카드). 대표생활 8년이 넘었지만 류지혜-김무교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이들이 목타던 한국 탁구에 부산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석-이조는 8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복식 결승서 장이닝-리 난(중국)조에 1―3으로 뒤져 패색이 짙었지만 이후 세 세트를 따내 4―3의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한국은 이들의 우승으로 1990년 베이징대회 이후 12년 만에 아시안게임 여자복식 금메달을 되찾았다.
"오랜 밑바닥 생활이었지만 한번도 실망한 적은 없었다"는 이들은 시드니올림픽부터 호흡을 함께 했다. 3월들어 아시안게임 복식출전을 준비했지만 주위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둘 모두 펜홀더 그립으로 스피드가 좋지만 드라이브의 파워와 안정감이 부족해 중국의 벽을 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12년 전 홍차옥과 함께 아시안게임 정상에 올랐던 현정화 코치의 생각은 달랐다. 힘과 기교가 있는 류지혜-김무교 조가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한 이상 한국 고유의 전진 속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석은미-이은실 조가 대안이라는 판단이었다. 둘은 현코치의 지도를 통해 스피드를 앞세운 공격박자 다변화에 주력했다.
1년 전부터 결승전 당일 아침까지 중국을 대비한 가상훈련을 했다는 이들은 결국 허를 찌르는 속공으로 아시아 정상에 우뚝섰다.
"힘들었던 생각에 시상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는 이들은 "여자탁구의 자존심을 지키게 돼 천만 다행"이라며 생애 최고의 기쁨을 만끽했다.
/울산=이준택기자 nag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