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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이은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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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이은혜 (2)

입력
2002.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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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는 1991년 5월14일 안기부 안가에서 일본 경찰청 직원들과 마주 앉았다. 벌써 일곱 번째였다. 일본은 그녀의 일본인화 교육을 맡았던 이은혜란 일본여성 신원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북한과의 수교회담에서 그 문제가 큰 현안이 된 것이다. 그간의 진술을 토대로 몽타주 사진까지 만들어 배포했으나 소득이 없자, 1970년대 이후 행방불명 된 일본 여성의 사진을 잔뜩 가지고 와 펼쳐 보였다. 그러나 김현희가 알아보는 얼굴은 없었다.■ 이번에도 틀렸구나 하고 포기하려 할 무렵, 마지막으로 제시된 사진을 보는 순간 그녀는 흠칫 놀랐다. 그리움과 반가움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로 이은혜 그 사람 얼굴이었다. 동북리 초대소에서 1년 8개월 동안 침식을 같이하면서 일본인 흉내를 배우던 공작원 교육 시절보다 앳된 모습이었지만,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듯한 시선은 슬픈 사연을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은혜가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와 동일인물이라는 단서가 된 김현희의 고백이다.

■ 이 사실을 근거로 일본 경찰은 이은혜가 1978년 여름 니가타 해변에서 실종된 다구치 야에코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10여년의 우여곡절 끝에 북한은 일본인 납치범행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다구치의 사망 사실도 밝혔다. 그 뒤 일본정부 조사단에 의해 다구치는 1984년 납북된 하라 다다아키란 일본인과 결혼했으며, 남편이 간경변으로 죽은 198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북한은 다구치와 이은혜가 동일인이라는 사실만은 부인했다.

■ 특수부대의 영웅주의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그 직권남용의 책임을 물어 한 명을 사형, 한 명을 장기징역형에 처했다고 북한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은혜란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직 KAL기 폭파범행을 시인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 끊어진 남북 철도 연결공사에 참여하고, 부산 아시안 게임에 대표단과 응원단을 보내고, 중단된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제의한 것을 보면 북한이 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외신의 말미에 붙어오는 이런 보도를 보면 북한을 보는 눈은 옛날로 되돌아가고 만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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