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는 억새와 함께 가을의 서정을 대표한다. 억새가 주로 산 위에서 가을을 이야기한다면 갈대는 물가에서 가을을 노래한다. 산에 오를 힘이 없다면 물가로 가자. 광활하게 펼쳐진 갈대밭을 바라보며 가을 나그네가 되어보자.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
여운포리(강원 양양군 손양면)
여운포리는 동해안의 이름난 해수욕장 하조대에서 북쪽으로 3㎞쯤 떨어져 있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푸른 동해의 파도를 맞는 곳이다. 가을의 냄새가 짙어지면 여운포리에는 또 다른 색깔의 물결이 일렁인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갈대의 평원. 10여 그루의 푸른 소나무만 달랑 가운데에 모여있을 뿐 눈이 닿는 모든 곳이 갈대의 바다다. 먼 바다에서 밀려 온 푸른 파도는 거칠게 해변을 두드리고 그 여운은 땅에 올라 갈색 파도를 일으킨다.
백사장과 송림, 혹은 절벽. 그 역동적 해안선에 드리워진 갈대의 벌판은 다른 지역의 갈대밭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갈대밭 너머 보이는 푸른 바다. 묘한 색깔의 스펙트럼이 운치를 돋운다.
여운포리의 갈대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가 되면서 일약 명소가 됐다. 한류열풍을 타고 중국에서도 찾아올 정도다. 때문에 많이 망가졌다. 하조대 해수욕장을 보필(?)하는 관광단지를 짓기 위해 갈대밭의 절반 이상이 파헤쳐졌다.
강릉에서 양양으로 향하는 7번 국도에서 쉽게 보이지만 "웬 벌판…"하면서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하조대를 지나 2㎞쯤 북상하면 바다와 키작은 소나무가 눈에 띈다. 승용차 20여대를 세울 수 있는 노견 샛도로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그물을 말리는 곳이니 주의해야 한다. 양양군청 관광문화과 (033)670-2251
■15만평 국내최대 규모
대대포구(전남 순천시 대대동)
약 15만평. 어마어마한 넓이이다. 흔히 대대포구라고 불리지만 순천시 교량동, 대대동과 해룡면의 중흥리, 해창리, 선학리 등에 걸쳐 있다. 순천 시내를 관통하는 동천과 순천시 상사면에서 흘러 온 이사천이 합쳐지는 지점이다.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갈대군락지가 아니다. 마치 논에 벼를 심어놓은 것처럼 빽빽하다. 국내 최대 규모란다. 바람이라도 불면 그 일렁이는 모습이 바다의 물결처럼 장엄하고 아름답다.
멀리서 바라보면 갈대만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여러가지가 섞여 있다. 물억새, 쑥부쟁이 등이 곳곳에 자기들만의 군락을 이루며 함께 꽃을 피운다. 하구의 물이 들고 나는 곳에는 계절에 따라 7가지로 색깔을 바꾼다는 칠면조 군락지도 들어서 있다.
순천만 갈대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새들의 서식지이자 철새 도래지이다. 흑두루미, 재두루미, 황새,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등 국제적인 희귀조들이 날아든다.
순천시에서 외곽으로 빠지다 청암대 사거리에서 좌회전, 4㎞ 정도 달리면 대대포에 닿는다. 한쪽에서 생태공원을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제방 아래 쪽으로 자동차 2대 정도가 오고갈 수 있는 비포장길이 나있다. 군데군데 차를 세울만한 공간이 있다. 차를 세우고 제방에 올라서면 바다 같은 갈대밭이 펼쳐진다. 순천시청 문화홍보과 (061)747-3328
■갈대꽃과 벗삼은 새들
금강하구둑(전북 군산시)
전북 장수군의 수분리에서 발원한 금강은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을 구불구불 돌아 군산에서 서해로 흘러든다. 약 400㎞를 달려온 물이 모이는 곳이 금강하구둑이다. 뱃길을 이용해야 했던 군산과 장항 사이는 둑이 연결되면서 단숨에 차로 왕래하게 되었고, 주변의 경관도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달라졌다. 이제는 사시사철 관광객이 모이는 내수면 관광지가 됐다.
갈대는 하구둑에서 약간 상류쪽으로 올라가면 구경할 수 있다. 너른 하구의 물빛을 배경으로 누렇게 익어가는 갈대꽃이 일품이다. 금강하구둑도 새들의 천국이다. 지금은 토박이 새들이 갈대 사이를 유유하게 돌아다니지만 이르면 이달 말부터 진객들을 맞는다. 고니, 검은머리갈매기 등 희귀한 조류도 구경할 수 있다.
금강하구둑 인근에는 볼만한 것이 많다. 민속자료 제24호인 고택 채병원 가옥, 기념물 제87호인 옛 군산세관, 문화재 제116호인 임피향교 등이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며 역사와 선인의 생활을 생각할 수 있는 볼거리들이다. 군산조류공원은 하구둑에 살고 있는 조류의 생태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서해안고속도로 군산 IC에서 빠져 706번 지방도로-29번 국도를 차례로 갈아타면 금강하구둑에 닿는다. 농업기반공사 금강사업단 (063)450-9999
/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 갈대와 억새의 차이
많은 사람들이 갈대와 억새를 혼동한다. 크기나 꽃이 피는 시기, 이삭의 모양 등이 비슷해 외견상 구분이 어렵다. 가장 쉬운 구분법은 갈대는 강이나 바다 등 물가에, 억새는 산등성이나 언덕에 자란다는 점. 특히 갈대는 해발 400m 이상엔 거의 없기 때문에 산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억새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삭으로도 구분이 가능하다. 갈대의 이삭이 갈색이면서 며칠 감지 않은 사람의 머리처럼 뭉쳐 있는 반면, 억새의 이삭은 백색에 가까우면서 한올 한올 분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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