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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탁구인 김명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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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탁구인 김명호씨

입력
2002.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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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金明鎬·67)씨는 '영원한 탁구인'이다. 청운중학교 때 탁구를 시작해 경기상고와 한양대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연합철강 코치와 대한탁구협회 이사를 거쳐,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20년간 탁구 지도자로 생활했다. 평생을 탁구와 함께 한길을 걸어왔다. 그런 그가 은퇴 후에도 노인들에게 탁구를 가르치며 다시 제2의 탁구인생을 살고 있다.

내 인생에서 탁구를 빼면 할 얘기가 별로 없다. 중학교 시절 탁구를 시작해 최근까지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다. 실업팀 코치와 대학탁구협회 이사로 있다가 1978년부터 20년간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탁구 코치를 맡았다. 나는 그 곳에서 탁구를 가르치는 데만 열중했다. 운동을 가르치는 일이라 언어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제자들 중 왕족이 많아 혜택을 받으며 생활했다.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은 모두 그 나라의 유명 인사들이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조폐공사 사장, 금융통화위원, 교육부장관, 유명 석유상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들은 지금도 한국을 방문하면 연락을 해오곤 한다.

처음 한국을 떠날 때는 아이들 때문에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낯선 외국 생활이 아이들의 견문을 넓힐 기회라고 생각해 과감하게 떠나기로 결정했다. 바라던 대로 아이들은 그 곳 생활에 잘 적응했다. 돌아올 때에는 오히려 외국생활을 오래 한 아이들이 한국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설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노파심일 뿐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아이들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적응했다. 뛰어난 영어실력과 운동실력을 바탕으로 친구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나는 운동만큼 좋은 교육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집중력과 사회성을 키우는 데는 운동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해온 우리 아이들은 어느 사회에든 쉽게 적응한다. 아이들은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명문대에서 의학과 국제경제학을 공부 중이다.

나와 아이들이 외국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내 덕분이었다. 내가 지도자 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는 수영장과 식당을 운영하며 생활을 꾸렸다. 덕분에 아내 스스로도 낯선 타지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5년 전 한국에 들어와 20년 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만나고 등산동호회에도 나가면서 바쁘게 보냈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그래서 지난 해 초부터 컴퓨터를 배우러 약수노인복지관에 나갔다. 친구들은 이 나이에 컴퓨터를 배워 무엇에 쓰겠느냐고 했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처럼 남은 인생도 열심히, 그리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보내고 싶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을 위해 복지관에 나갔지만 조금 지내다 보니 그 곳에서도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이가 들수록 적당한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 나라에서 노인들이 즐길 만한 운동은 그리 흔치 않다. 고심 끝에 노인들이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탁구교실을 운영하기로 했다. 지난 해 12월 사비를 털고 협찬을 받아 탁구대를 설치해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약수종합복지관에서 화요일과 목요일 2시간씩, 신당3동사무소 내 탁구교실에서 일주일에 한 번 강습을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선수들도 가르쳤는데, 노인네들쯤이야'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초보자들이라 일일이 다 가르쳐 주어야 하고 노인들이라 쉽게 노여움을 탄다. 주중에는 이렇게 하루하루 분주히 보내고 주말에는 원로 탁구인 동호회에 나가 지인들과 탁구시합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한창 때 못지않은 승부욕을 불태우며 땀을 빼고 나면 몸이 날듯이 가벼워진다.

나는 친구나 후배에게도 봉사를 하라고 권유한다. 봉사는 남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건강과 젊음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저마다 사회에 환원해야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인생을 살면서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 나에게는 그것이 탁구였다.

노인들은 스스로 인생의 황혼기라는 둥, 덤 인생이라는 둥 하면서 자조 섞인 자기 비하를 서슴지않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년은 끊임없이 일하고 도전하면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요즘 컴퓨터를 배워 아이들에게 메일로 대화를 하고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또 국민생활체육 전국탁구연합회 부회장과 아시안게임 자문위원, 녹색운동 대표로도 열심히 활동 중이다.

녹색운동은 전국의 탁구 동호인들이 모여 만든 모임으로, 월드컵 때 전세계를 놀라게 한 붉은 악마 같은 탁구팀 서포터스라고 보면 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탁구교실도 꾸준히 운영할 계획이다. 탁구를 시작하면서 건강해졌다는 노인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좁은 나라에서 탁구만큼 좋은 운동도 드물다.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 내 나이 67세. 아직 한 일보다 할 일이 더 많은 나이다. 지금까지 생활에 쫓겨 미처 하지 못했던 일도 해보고 남들도 돌아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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