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30대 중반의 미혼여성입니다. 그 동안 제 일을 갖고 있었던 데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독신의 고달픔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우연히 일로 알게 된 동갑 남성과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한사코 반대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결혼을 표면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단점을 이리 저리 들어 제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떠난 뒤 60대 후반인 어머니가 겪을 고독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어머니를 위해 제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요?(서울 여의도동 강씨)
답/노모를 위해 한창 나이의 미혼여성이 자기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댁처럼 일과 어머니 모시기에 몰두하다가 혼기를 훌쩍 넘긴 미혼여성이 자꾸 많아져 따로 '혼기'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인간은 철이 세번 듭니다. 첫번은 청년기에 부모야말로 나를 가장 깊이 사랑해주신 분임을 깨닫는 것이고, 두번째는 중년기에서 부모도 그저 자신을 먼저 생각하시는 보통사람임을 깨닫는 것이지요. 셋째는 노년기에 이르러 부모와 나도 사람됨됨이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아 이제 만나 뵌다면 친구같겠다고 느끼는 시점이지요.
부모는 자식을 쭉 키워왔기에 아무리 장성한 자식이라도 어디를 건드리면 어떤 반응을 할 지 잘 알고 있지요. 자식을 쉽게 조정할 줄 안다는 말입니다. 요즈음 이혼이 많아지는 것도 친정어머니가 자식을 조금 낳아 귀하게 키운 딸인지라 "감히 누가! 헤어지고 당장 들어오너라!"고 부추기기 때문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도 잡아준다는 말은 없어지고, 이제는 서양처럼 장모와 사위가 서로를 경계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지요. 오래 독신생활을 한 어머니는 결혼하게 된 딸을 선망하고 질투할 수도 있고, 방탕하다 먼저 간 남편 때문에 딸에게 남성 일반에 대해 미움과 경멸을 고취할 수 있습니다.
사귀는 남성을 일로 알게 되었다니 보통 중매보다 인간파악이 더 잘 되었을 것이지만 가정 평가가 대신 미흡하겠습니다. 그러나 여하튼 댁의 안목이 어머님 안목보다 더 나으리라 봅니다. 남자에게 댁 어머님에게 좋게 뵈는 방법을 조언해주십시오. 문제의 반은 댁에서 온 것입니다. 댁이 소신을 보이면 어머님은 차차 수그러지시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 어머니는 그 틈을 파고 들어 올 것입니다. 결혼한다면 어머님 이웃에 살면서 돌보아 드리리라 믿습니다.
/조두영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명예교수 dycho@dyc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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