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사는 평등하다. 한 근육이 다른 근육을 힘으로 억누르지도, 힘을 과시하지도 않은 채 오로지 동물적 육감으로만 공간과 시간을 점거한다. 두 사람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간헐적 헐떡거림이나 신음 소리는 절박하게 들린다. 남자와 남자의 섹스라는 소재가 갖는 시각적 충격과 더불어 섹스가 왜 그들에게는 그토록 절박한지를 증명해주는 화면이다.이처럼 충격적으로 첫 장면을 시작하는 영화 '로드무비'(감독 김인식)는 동성애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한국 영화 역사를 통틀어 가장 선정적인 첫 장면으로 평가될 만한 두 남자의 섹스 장면으로 시작해, 영화는 왕자웨이의 '해피 투게더'에 버금갈 만한 충격적 장면이 펼쳐진다. 동성애를 '비역질'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혐오나 구토의 대상이다.
그러나 '로드 무비'는 두 남자의 여정을 그린 로드 무비이며 동시에 한 남자의 간절한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이다. 프랑스 예술 영화의 향취가 묻어나는 화면은 이런 동화적 상상을 더욱 부추긴다.
한 순간에 망한 펀드매니저 석원(정찬), 자살하려는 그를 구해준 노숙자 대식(황정민). 여전히 중산층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는 석원과 동성애자인 대식은 오갈 데 없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결국 두 사람은 무작정 여행 길에 올라 한 여자를 만난다. 바닷가 소도시의 티켓 다방에서 일하는 일주(서린)는 물 속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대식을 무작정 따라 나선다. 일주는 대식을 사랑하고, 대식은 석원을 사랑하지만, 석원은 대식의 사랑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 나 한번 따먹으려고 이렇게 잘해준거야?" 석원에게 대식의 사랑은 구역질나는 감정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석원은 끊임없이 대식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알거지가 된 화이트 칼라 노동자는 공사판이나 채석장, 바닷가 노역장에서 쓸모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로드 무비'는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관계를 사랑이라고 명시한다.
아내(방은진)도 있고, 아이도 있는 대식이 왜 동성애자가 됐는지, 왜 아들이 자신을 "삼촌"이라 부르는지도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략을 통해 영화는 그들 동성애자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존재의 방식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쯤 되면 석원에게 대식이 "처음부터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동성애 소재를 사랑으로 풀어낸 감독의 능력은 감각적이고 신선한 화면을 만들어내는 데 또 한번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16㎜카메라로 촬영하고 디지털로 변환한 뒤, 한 프레임 속에서 부분별로 색을 보정하는 작업을 거친 화면은 표현주의 화가의 화면처럼 때론 명징한 색감으로, 때론 몽환적인 색채나 흑백화면으로 시각적 자극을 준다. 인생 막장에 선 두 남자가 길을 떠나는 모습에서 공허함이 가득 느껴지는 화면은 최근 선보인 영화 중 미학적 완성도가 가장 두드러진다.
세련된 영상미가 지나쳐 노숙자나 동성애자의 심리적 저변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게 아쉽지만, 그들에 대한 다큐가 아니라 멜로 영화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그것조차 큰 흠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18일 개봉. 18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 김인식 감독
"사람들은 동성애를 '동물적이다' '끔찍하다'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정서를 영화 첫 부분에 그대로 옮겨놓고 싶었다. 그것을 전제로 사랑을 얘기하고 싶었다."
'로드 무비'의 김인식 감독(42)은 호모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고, 주인공 석원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호모 새끼'를 비웃는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은 "20대 감독에게서는 죽어도 나올 수 없는 생에 대한 원숙한 시선이 돋보인다"고 극찬했다.
데뷔작이 늦었다. 전남대 불문과 졸업 후 1987년부터 93년까지 프랑스에서 유학했다. 파리영화학교 E.S.E.C.를 다녔고, 학교를 마친 뒤에도 파리에 4년을 더 머물렀다. 유학 중 '베를린 리포트' '명자 아끼꼬 쏘냐' 등의 연출부 일을 맡기도 했던 그는 "늘 영화를 하려고 했지만 꼭 결정적인 순간에 어그러졌다"고 실토했다. 그의 영화는 한마디로 장사가 안될 것 같기 때문이다. 동성애 영화도 유학의 영향일까. "당초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처음엔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일주일 후, 잘 만든 로드 무비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을 돌렸다."
"4㎾짜리 발전기 하나로 찍은 것"이라고 자신의 영화를 설명했다. 예산이 넉넉치 않은데다 이동이 잦아 조명시설을 완비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어두운 톤을 디지털로 조정한 화면은 꽤나 매력적. "호모들은 여성적이라는 편견을 부수고 싶어 대식의 육체를 부각했다"는 감독은 "'죽어도 좋아'의 덕을 봤다"고 말했다. 사실 이 영화의 노출 수위는 '죽어도 좋아'와 비슷하지만, 제한상영가 공방이 뜨거워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비교적 '너그럽게' 보아준 것 같다는 설명.
"더 대담하게 찍고 싶은 데 스스로 자기 검열이 많이 됐다"는 김인식 감독. '바이올렛' '유레일 패스' 등 영화로 만들지 못한 작품을 곧 소설로 출간할 예정이다.
/박은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