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외 교역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는 29개 서부 항만 폐쇄가 2주째로 접어들면서 아시아 등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노·사간 중재에 나섰지만 7일 협상마저 결렬돼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비상조치인 태프트―하틀리법 발동까지 검토되고 있다.▶배경
노사 갈등이 기본 구도다. 사용자측인 태평양해운협회(PMA)와 1만500여 항만노동자를 대표하는 국제연안·창고노조(ILWU)는 3년만의 단체협약 갱신을 둘러싸고 5월 이후 협상을 해왔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노조가 단협 갱신 시한(7월 1일)을 넘기고도 태업을 계속하자 해운협회는 급기야 9월 29일 무기한 직장폐쇄로 맞불을 놓았다.
쟁점은 복지 혜택 확대 및 고용 안정. 특히 노조는 화물을 자동 등록할 수 있는 광학스캐너 등 신기술을 도입하려는 사측의 시도에 대해 인력감축을 우려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해운협회 관계자는 "기술력이 떨어져 이미 몇몇 항만에서는 심각한 병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늘어나는 물동량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신기술 도입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향
미국 내 사업장의 노사 갈등이 세계적 이슈로 부각되는 것은 서부 항만이 미국과 아시아를 잇는 가장 중요한 교역 관문이기 때문이다.
연간 3,000억 달러어치의 화물을 처리하는 서부 항만은 폐쇄로 인한 피해가 첫 5일 동안 하루 10억 달러, 이후에는 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선박 및 지상에 적체된 신선화물이 부패하거나 납품 기일을 맞추지 못해 계약 파기가 잇따를 경우 서부 항만을 이용하는 미국 및 아시아 수출입 업체들은 파산할 수도 있다.
세계 경제의 대목인 미국의 크리스마스 시즌이 이번 사태로 허공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7일 "미국 경제 회복이 기대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부각되는 가운데 서부 항만 폐쇄로 출하가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 연말을 앞둔 아시아 IT(정보기술) 업체들의 큰 고민거리로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사태가 한달 간 계속될 경우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몇몇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기침체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격렬한 (서부 항만) 노사 분규와 이라크전에 대한 우려로 정책결정자들은 보기 드물 정도의 불확실성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망
사태가 심각해지자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적극 개입을 시사하고 나섰다. 부시 대통령은 7일 항만 폐쇄에 따른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위원회 구성은 '태프트―하틀리법'에 따른 첫 번째 조치로, 조사 결과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부시는 노동자들을 강제 복귀토록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중간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부시가 공화당 지지세력인 항만노조를 자극하는 조치를 취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실제 개입 여부는 미지수다. 조사위원회 구성은 노사 양측에 대해 원만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강력한 경고'에 그칠 수도 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美 태프트-하틀리法은
1947년 제정된 미국의 노동 관계법으로 제안자 태프트(Taft)와 하틀리(Hartley) 이름에서 명칭을 따왔다.
노동쟁의가 국민 건강과 국가 안보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경우, 대통령이 파업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대통령은 직장폐쇄를 풀고 노조에 직장 복귀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80일간의 냉각기간을 갖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석탄노조 파업시 발동했다가 실패한 이후 아직 발동한 사례가 없다. 이 법 발동은 그만큼 성공이 어렵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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