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유동성 위기를 헤쳐나가던 현대그룹이 대북 4억달러 비밀지원설 등으로 다시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그룹의 모회사격인 현대상선이 대북비밀 지원설로 대외 신뢰에 큰 타격을 받은 데다 미국 서부항만 파업까지 겹쳐 위기감이 커지고 있고, 현대아산은 시급한 외자유치가 난항을 맞을 전망이다.
7일 현대그룹에 따르면 최근 노정익(盧政翼) 신임사장 취임이후 현대상선은 자동차선 매각을 위한 채권단의 로드쇼 개최, 임원의 37% 정리, 미주 법인건물 매각 등 구조조정 작업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러나 대북지원설이 제기된 이후 자동차선 매각 대금 15억달러중 9억달러를 조달할 로드쇼에 일부 은행들이 참가를 주저해 매각작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부채비율을 1,300%에서 360%로 줄이고, 단기차입금을 8,000억원대로 낮추는 매각작업이 끝나야 현대상선은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매각대금 중 3,000억원을 상선측에 운영자금으로 제공하려던 산업은행의 입지도 이번 의혹으로 좁아져 연말 회사채 상환에 어려움도예상된다. 상선이 헐값매각 시비 속에 미주법인 건물을 2,850만달러에 최근 매각한 것도 유동성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미국 서부항만의 파업이 계속되면 현대상선의 주수입원인 컨테이너선 운항에 큰 지장이 우려된다. 이에 따라 현대아산, 현대택배, 현대증권, 현대투신, 현대상사 등 계열사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현대상선의주가는 겨우 2,000원 선을 지키고 있다.
현대아산의 경우 발표가 임박한 개성공단·금강산 특구의 사업활성화를 위한 외자유치가 어려워지고 있다. 개성공단 건설운영권과 금강산 사업 독점권을 갖고 있는 현대아산측은 "금강산특구의 경우 가장 필요한 숙박시설, 골프장 등 위락시설 건설에 수억달러가 든다"며"자꾸 의혹만 제기하면 여기에 누가 투자하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편 금강산 관광객은 9월 태풍영향으로 4,700여명으로 줄었으나 가을 성수기를 맞아 이번 달부터 평월의 1만명 수준은 회복할 것으로 예상돼, 이번 사태의 영향은 적은 편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2000년 상반기 현대는 형제간 경영권 다툼, 현대투신 사태 등으로 인한 시장신뢰가 무너져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며"이번 의혹공방으로 현대계열사들이 2년간 구조조정 끝에 되찾은 시장의 신뢰를 다시 잃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대상선도 이날 자료를 내고 "국회의원의 말 한마디에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면서 "이번 사건은 그 진위를 떠나, 국가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회사에게 너무 가혹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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