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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말 "권력기관 기강해이" 심각/정치권 눈치보고… 줄대고… 일은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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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말 "권력기관 기강해이" 심각/정치권 눈치보고… 줄대고… 일은 "뒷전"

입력
2002.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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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시즌이 되면, 유력 대통령 후보에 줄을 대려는 철새 공직자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줄대기, 정보유출은 임기말 불가피한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극심한 상황이다. 특히 국정원 군 검찰 경찰 등 이른바 힘있는 핵심 기관들에서 국가 기밀들이 누설되고 뒷거래가 난무하는 현실은 국민들을 걱정시키고 있다. 공직기강의 붕괴는 출세에 눈이 먼 공직자들의 잘못 때문이지만, 이를 사주하는 정치권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청와대·국정원

청와대는 비교적 정보유출이나 기강 해이 현상에서 벗어나 있다. 고위 관계자들도 임기말 기강확립에 예민한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달 청와대 직원식당 조리사가 펴낸 '청와대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책에 대해 엄중한 처리를 한 이유도 기강 확립 때문이었다.

기밀 누설 사태는 없지만 응집력, 장악력은 현저히 떨어진 분위기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대통령을 겨냥해 파상공세를 퍼부어도 청와대 비서실이 방어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고, 오히려 자기 보신에 급급하다는 인상마저 들게 한다. 그래서 "임기 말 대통령은 외로운 법"이라는 자조마저 나온다.

국정원도 임기 말 현상을 겪고 있다. 사실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정보가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한 관계자는 "국정원의 감청 자료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돌아다니는 지경"이라며 "정치권에 줄을 대는 일부 직원의 그릇된 행태로 국가 정보기관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감청 논란이 국정원 개선의 충정에서 비롯됐다면 그나마 가치가 있다"며 "그러나 대권 게임에서 무조건 이기겠다는 정치권과 대선 후 출세를 겨냥한 철새 공직자의 야합이라면 극히 우려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치권과 뒷거래를 하는 직원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고위관계자는 "선거 때라고 해서 국가 정보기관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면서 "국정원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모두에게 부담되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국정원은 몇몇 불미스런 사건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면서 "본연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라고 말했다.

■군

군은 '창군 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내부가 요동치고 있다. 잇단 항명 파동으로 군의 생명인 사기가 급락한 데다 인사철이 다가오면서 대선을 앞두고 현역 군인들이 유력정치인에 줄을 대려한다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군내부에선 "아무리 정권 말기라지만 어쩌다 군이 이 지경이 됐느냐"는 자탄이 흘러나온다. 군내 정보계통에서 서열 2위인 5679부대장인 한철용(韓哲鏞·육사 26기) 소장이 4일 국방위감사에서 군 기밀인 '블랙북'(북한 일일정보보고서)을 장관과 합참의장이 보는 앞에서 흔들어 댄 사건은 군 내부를 충격으로 몰고갔다. 5679부대는 존재자체가 군 기밀이다. 한 소장은 부하들의 사기와 진실을 알리기 위해 폭로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군인들은 "대령도 되기 힘든데 '투스타'까지 된 사람이 군 조직을 붕괴시키느냐"며 한 소장에 대해 불만이 높다.

또한 병풍 사건과 관련, 당시 군검찰 수사에 관여했던 간부들이 국회 법사위에서 장관을 앞에 두고 서로 극한 대립상을 보인 것도 군 내부의 난맥상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검찰·경찰

검찰과 경찰은 요즘 납작 엎드렸다. 검찰은 조직 전체가 대선을 앞두고 "책임 질 일은 건드리지 말자"며 소위 정치권과 연결될 소지가 많은 사안에 대해선 손사래를 치고 있다.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 병풍 사건 수사를 제외하곤 요즘 대검 중수부든, 서울지검 특수부든 개점휴업 상태다. 이 같은 기류는 일선 검찰은 물론 사정(司正)의 신경조직과도 같은 일선 경찰까지 그대로 전해져 '사정 마비'현상으로 불릴 정도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법조계에선 대선을 앞두고 수사 정보를 담은 봉투를 들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정치 검사'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이다.

병풍사건 수사를 살얼음 걷는 심정으로 진행해 온 검찰에선 최종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는 지금 출신지역·학연 별로 수사 전반에 대해 평가가 갈리는 미묘한 파열음이 감지되기도 한다. 중요보직을 회피하는 정권말의 기현상도 다시 재연됐다. 8월 인사에서 중요보직 간부들이 유임되자 비호남 지역 간부급 검사들은 "오히려 잘됐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경찰은 한 술 더 뜬다. 매년 11월께 있는 경찰 수뇌부 인사가 이번에 있을지 불투명하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수뇌부 인사를 할 경우 선거용 인사라는 정치공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권교체 향방에 따라서는 '한시적 인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

한 경찰 간부는 "과거에는 정권 말기에 인사를 하지 않는 게 통례였지만 서울경찰청 차장 자리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인사여부에 대해 아무런 방침이 없는 건 납득할 수 없다"며 "결국 정치권 눈치보기가 아니냐"고 꼬집었다.

■금감위·금감원

금융감독위와 금융감독원 내부에서도 이번 국감을 통해 정권말 레임덕 현상이 가시화했다는 평가다. 이근영(李瑾榮) 금감위원장이 "4,000억원 대북 지원설과 관련, 금감원이 계좌추적권을 발동하는 것은 현행 금융실명제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행위"라고 강조했음에도 금감위 몇몇 관계자들은 "언제는 법을 원칙대로 지켰냐"는 발언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 금감원 노조에서도 "금감원이 관료의 지배를 받아 중립성을 의심 받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공정한 업무수행이 힘들다"며 "이근영 금감원장은 계좌추적을 실시하든지, 퇴진하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더욱이 국감에서 이성헌(李性憲·한나라) 의원이 금감원 내부 제보라며 "이근영 원장이 졸업한 특정고교 출신들이 만든 벤처캐피털의 행사에 이 학교 출신 금감원 간부들이 감독기관으로서의 공정성을 망각하며 대거 참석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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