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들의 공격이 갈수록 거세지네." "우리도 쳐들어 갈까요?"지난 주말 A 대통령후보의 사이버팀 사무실. '시삽'(system operator)으로 불리는 김 모씨는 후보 홈페이지 '순찰 활동'을 하다가 '사기꾼' 'xxx' 등 갖가지 욕설을 담은 글을 발견했다. 김씨의 삭제 지시를 받은 후배 직원은 먼저 발신자의 IP(internet protocol)를 추적했다. 전화 연락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PC방이었다.
■메뚜기와 알바
대선이 다가오면서 달아 오르고 있는 '인터넷 전쟁'의 한 풍경이다. A 후보측의 김씨는 6일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PC방을 돌아 다니며 험한 글을 올리는 꾼들을 메뚜기라고 부른다"며 "그들은 대선 주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메뚜기' 중에는 돈을 받고 뛰는 '알바'(아르바이트)도 적지 않다고 그는 덧붙였다.
B 후보측 관계자는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메뚜기들이 지방으로 출장을 가고 더러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원정을 가는 경우도 있다"며 "IP 세탁 프로그램을 활용해 미국 등에서 발신한 것처럼 IP를 조작하는 것도 흔한 수법"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인터넷 선거본부 천호선(千皓宣) 기획실장은 "다른 후보측이 해외로 나가 도메인을 신청한 뒤 대선 막판에 'xxx이여 단결하라' 등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스팸메일을 마구 쏘아 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첩보영화에서 나오는 '온라인 스파이'까지 등장했다. 대다수 스파이는 상대 후보의 팬클럽에 가입해 비난하는 글을 올리는 데 주력한다. 고급 스파이는 상대 후보에 대해 좋은 글만 올리면서 정보 빼오기에 주력한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팬클럽인 '창사랑' 관계자는 "회원만 글을 올리도록 돼 있는 홈페이지인데도 이 후보를 비난하는 글이 전체의 20% 가량"이라며 "창사랑 회원 중 수백명은 노사모 회원이나 정몽준(鄭夢準) 의원 지지자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측 관계자도 "창사랑 회원 일부가 노사모에 들어 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비슷한 얘기를 했다.
■여론조사 조작, 언론 공격
각 후보측은 인터넷 여론조사 조작과 언론 공격까지 시도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올 초 민주당 대선 예비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몇몇 주자측이 마구 수치를 올리는 바람에 일부 인터넷 여론조사가 다운되기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여론조사 조작은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이뤄진다. ID(identification) 단위로 조사할 때는 다량의 주민등록번호를 확보해 수백, 수천개의 ID를 만들어 쓴다. IP 단위로 조사할 경우에는 한 사람의 '메뚜기'가 하루 종일 여러 곳의 PC방을 돌아 다니며 300∼400개의 컴퓨터를 만진다. 또 해킹 등을 통해 수치를 완전히 조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조작 우려 때문에 선정된 응답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여론조사를 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메일 여론조사 기관인 '보트코리아'의 간부 상당수가 민주당 경선 때 노무현 후보 캠프에 참여해 다른 주자들이 공정성 논란을 제기한 적이 있다. 한 언론사와 제휴사업도 벌였던 보트코리아는 얼마 전 문을 닫았다. 불리한 언론 기사에 대해 조직적으로 반박하는 글을 올리는 일도 각 후보 사이버팀의 주요 과제이다. 기자에게 "목을 자르겠다"는 등의 협박문을 띄우는 예도 드물지 않다.
■'논리 제공팀'의 작전 지침
인터넷 전쟁의 전사(戰士)는 공식 사이버 관리팀과 알바, 팬클럽 핵심 회원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사이버팀 상근 관리자는 지방조직까지 합치면 각각 50여명 수준이다. 한나라당은 당의 사이버지원단(10여명)과 마포구 공덕동에 둔 창사랑 본부(7명 가량), 이회창 후보 홈페이지 관리팀 등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민주당은 최근 당 홈페이지와 노무현 후보 홈페이지를 통합 관리하기 위한 인터넷 선거운동본부를 26명의 요원으로 출범시켰다. 여의도의 '노사모' 본부에도 상근자들이 있다. 정몽준 의원측은 '국민통합신당 추진위'의 서소문 사무실에 15명 가량으로 구성된 사이버팀을 두고 있다.
팬클럽 규모에서는 노사모가 회원이 5만 3,000여명으로 가장 크다. 노사모 회원 중 5,000여명은 지역별로 오프라인 모임을 가질 정도이다. 1만 300여명의 회원을 확보한 창사랑은 요즘 한창 시·도별 오프라인 모임을 조직하고 있다. 정몽준 의원은 최근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팬클럽이 통합되지 않아 '몽사모''정사랑''MJ 러브''트러스트' 등 10여개에 이르는데 전체 회원은 3만명선에 이르고 있다. 팬클럽은 회원들의 인터넷 활용도가 높다는 점에서 사이버 전쟁의 예비 군단이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팬클럽 회원 중 열정적 논객만 후보별로 500∼1,000명 수준"이라며 "정당·후보 홈페이지에서 공방을 벌이는 사람들 가운데 80% 이상이 후보들과 연결된 인터넷 부대여서 결국 '꾼들만의 잔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버관리팀은 '논리 제공팀'의 측면 지원을 받으면서 이메일, 전화, 오프라인 모임 등을 통해 알바 및 팬클럽 회원들에게 작전 지침을 내린다. 알바는 특정 소설의 등장 인물 이름을 필명으로 써 성과를 평가 받고 한달에 100만∼200만원의 대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세 후보측은 알바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알바를 쓰지 않는다"고 결백을 주장한다. 관리팀은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상대 후보에 불리한 글이 있으면 다른 사이트로 '퍼나르기'를 해서 '도배'를 하거나 이메일을 대량 발송하도록 지시한다. '리플 달기'도 중요한 무기이다. 자기 후보를 비방하는 글이 뜨면 알바 등을 동원해 '댓글(답글)'을 잇달아 띄워 원문의 초점을 흐리는 수법이다.
해킹, 바이러스 유포, 다량의 스팸 메일 발송 등으로 상대 후보측의 인터넷망을 마비시키는 '사이버 테러'도 종종 일어난다. 한나라당 사이버지원단 김수철(金秀哲) 차장은 "대선 막판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윈도보다는 해킹에 더 잘 견디는 리눅스 운영 시스템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무력한 대응
쌍방향 의사 소통이 가능한 인터넷의 장점이 후보 간의 진흙탕 싸움으로 굴절된 지 오래이다. 지난 1월 구성된 중앙선관위의 사이버검색반은 13명의 요원을 두고 200여개 사이트를 감시하고 있다. 선관위는 2일 인터넷에 오른 글들 가운데 '말세에 이씨가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 '노무현은 왠지 불안하다' '몽주니가 안 되는 이유' 등 50여건을 골라 삭제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 대응센터도 1,050개 사이트를 순찰하고 있으나 선거 관련 전담은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날로 지능화하는 불법 인터넷 선거운동에 대응하기는 어렵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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