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로 촉발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7일로 1년을 맞았다. 미군 등 연합군의 일방적인 공습과 반군 북부동맹의 지원으로 폭압정치를 편 탈레반 정권은 개전 3개월 만에 무너졌다.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조직도 근거지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하지만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완전한 승리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4일 밤에도 탈레반 거점이던 칸다하르에서 미군 헬리콥터가 공격을 받는 등 탈레반 잔당과 알 카에다 조직은 여전히 재기를 노리고 있다. 게다가 전쟁의 목표였던 아프간의 평화 회복까지는 난제가 첩첩이다.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서는 현지 미군들은 갈수록 사기를 잃어가고 아프간에서는 마약, 음주, 도박, 매매춘 등이 급속하게 퍼지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대민 봉사로 작전 중심 이동
AP 통신이 칸다하르에서 보낸 르포에 따르면 칸다하르 인근 미 공군기지에 온 지 3개월째인 조지프 폴 윌리(20) 일등병의 6일 임무는 기지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마을에 의료 봉사활동을 나선 미군 의무대를 경호하는 일이다. 82 공수부대 소속인 그는 만나는 아프간 어린이들에게 사탕과 연필, 칫솔 따위를 나눠주며 '환심'사기에 열을 올렸다.
현재 아프간에서 작전 수행 중인 미군은 모두 8,000명 정도. 주력 임무는 여전히 동부 산악 지역과 카불 인근, 칸다하르에서 빈 라덴의 소재를 찾고 알 카에다 조직을 색출하는 데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작전은 테러 조직 소탕보다 군민 합동작전이나 전후 재건 사업 등 인도적인 대민 지원으로 중심을 옮기고 있다.
워낙 반미 감정이 깊은 데다 오폭 사건으로 민심이 극도로 나빠진 지역 주민을 유화할 목적으로 군민 합동작전이 아프간 내 11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대부분 예비역 대민 담당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 활동은 곧 15개 지역으로 범위를 넓히고, 투입 인력도 11월까지 150명에서 350명으로 늘어난다. 아프간내 미군 정규군을 지휘하고 있는 존 바인스 육군 소장은 "이상적으로 말해 우리는 미군이나 다른 연합군들이 아프간 주민들의 분노를 사면서까지 무기를 들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의 더글러스 페이스 정책 담당 차관은 아프간 내 미군들을 곧 평화유지활동에 주안을 두어 재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하지만 적들이 사라진 산악과 거리에서 작전을 펴는 아프간 내 미군들의 사기가 형편없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개전 초기와 달리 규모를 갖춘 기지를 거대한 감옥으로 느끼는 병사도 적지 않고, 일부는 반미 감정으로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분노하는 민심의 표적이 된 데 절망하고 있다. 수색 작전 중 아프간 민간인 사살, 성폭행 등 범행 사례도 보도되고 있다.
■여전한 정치 불안, 번지는 범죄
아프간의 평화와 사회 안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원조 부족에 따른 전후 재건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둘째 치고 폐허를 복구하기도 전에 탈레반에 억눌렸던 주민들의 욕구가 터져나오면서 도박, 매매춘 등의 사회 범죄가 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최근 카불 북부 바그람 미 공군기지 앞에 50곳의 점포가 늘어서 미군 기지에서 흘러나오는 술 등의 상품들을 밀거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카르자이 정부가 엄격히 통제하고 있지만 카불 거리에서 대마를 피우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약 인구도 급속히 늘고 있다. 세무나 자동차 등록 등 각종 인허가 관련 비리도 끊이지 않는다. 수뢰 혐의로 카불 시장이 해임된 것은 일례에 불과하다. 도박, 포르노 비디오 유통, 소년 동성애 문제 등도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 압둘 카디르 부통령 피살에 이어 지난달 칸다하르에서 일어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 암살 기도는 새로 출범한 아프간 정권이 얼마나 불안한 기반에 서 있는지 입증한다. 카불 인근에서는 카르자이 정권의 영향력이 공고하지만 이외의 아프간 각지에서는 군벌 지도자들이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새 정권 통치권 밖의 국민은 2,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 이라크 공격도 아프간전 승리 후의 경험을 교훈 삼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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