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12(1992년 10월2일)에서 648.10(2002년 10월2일)으로.현재 종합주가지수와 10년전 지수를 비교하면 한국 증시는 26.3%(134.98포인트) 오르는데 그쳤다. 그나마 당일 주가를 비교했을 뿐 한 달치 평균으로 보면 10년 전과 지금 지수가 비슷하다. 그동안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9.8%씩 성장해 경제 규모가 두 배(151%) 넘게 커졌다. 1인당 국민소득이 8,900달러(2001년)에 이르고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 기업도 많은데, 경제성장을 반영하는 주식시장은 왜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까.
■13차례 1,000돌파 시도
세계 주요 증시에서 한국 시장만큼 제자리를 맴도는 시장도 드물다. 미국 뉴욕 증시가 최근 폭락하고 있지만 10년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140% 넘게 오른 상태며, 독일 증시가 망가졌다지만 92년 보다는 98% 상승한 상태다.
금융위기로 주가가 80년대로 추락한 일본을 제외하고 대부분 10년 이상 꾸준히 오르는 대세상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한국증시는 89년 3월31일 1,000선을 뚫은 이후 13차례나 1,000선 돌파를 시도했지만 며칠 버티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동원증권 리서치센터의 분석결과, 98년 외환위기를 제외하고 90년 이후 한국증시는 10년 넘게 500∼1,000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르내렸으며 지수 600대에서 3년(35개월), 700대에서 2년 반(31개월)을 머물렀다.
■기업, 주주이익 나몰라라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증권가에서는 '저평가' 운운하지만 사실 한국증시의 '게걸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업들은 주가가 오를 때마다 무더기로 유상증자를 해 투자자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끌어가고는 주식 물량만 시장에 쏟아냈다.
지수가 1,000을 넘었던 89년과 94년 국내 기업의 유상증자 규모는 GDP대비 11%와 6.7%에 달해 연 21조원을 넘었다. 그대신 비싼 값에 주식을 산 투자자들에게 배당은 아예 없거나 쥐꼬리였다. 외환위기이후 '한국물'에 대한 외국투자자들의 싸구려인식(코리아디스카운트)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기업 몰락과 주가 레임덕
한국 기업의 부침(浮沈)이 심한 것도 주가 정체의 원인. 89년 시가총액 10위안에 들었던 신탁 한일등 은행 5개는 증시에서 사라지거나 감자(減資)해 주식이 휴지조각이 됐다. 동원증권 강성모 투자전략팀장은 "당시 은행주를 가졌던 투자자들은 지금 한푼도 건지지 못했다"며 "10년간 삼성전자 등 우량주의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대우 현대 등 30대 재벌의 가치가 급락하고 기업의 수익이 경기 변화에 따라 크게 출렁인 것이 잠깐 끓었다 식었다를 반복하는 '냄비증시'를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5년마다 새로운 대통령과 정권이 나온다는 점도 경제정책에 민감한 투자자들에게는 부담이다. 교보증권 김석중 상무는 "한국증시는 5년을 주기로 대통령 임기 초에는 상승하다가 정권 말에는 어김없이 하락하는 '주가 레임덕' 현상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증시 선순환으로 바뀌나
과거가 보여주는 '박스권 횡보'증시 패턴에서 비롯된 '주식 불신' 때문에 좀처럼 돈이 증시로 들어오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 기업의 펀더멘털과 개인의 자산운용에 서서히 변화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박만순 이사는 "개인 금융자산의 주식투자비중은 10년 전과 비슷한 6.8% 수준이지만 인구구조의 중심부를 차지한 40∼50대들이 그동안 축적한 자산을 수익성 높은 곳에 투자하려 하고, 기업들은 올해부터 증자보다는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식을 '바이백'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연구원 우영호 부원장은 "기업연금 제도와 시가 배당 활성화 등을 통해 주식수요기반이 확충되고, 기업의 내실 경영과 주주 중시 경영이 정착되면서 개인이 주식투자를 통해 이익을 내는 선순환이 이뤄지면 한국증시도 한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