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주식 열풍이 불던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어느 날 새벽 여섯시께 모 증권사 마포지점에 고객 한 사람이 찾아왔다.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다가 일착으로 등장한 그 고객은 직원을 붙잡고 "3,000만원 어치 주식 사주세요"라고 했단다.지방에서 올라온 그 고객은 주변 사람들이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말을 듣고는, 땅을 일부 처분해 상경했다고 한다.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새벽같이 일어나 주식을 사러 온 것. 당시만 해도 지방 중소도시엔 증권사 지점이 거의 없었다. 이런 일화를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선진국 증시에서 "주식 100만원 어치 주세요"와 같은 식의 상품이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더니, 드디어 14일 우리나라 거래소 시장에도 등장한다. 바로 상장주식펀드(ETF)이다. 일반인은 포트폴리오 투자가 좋은 줄 알면서도, 자금규모가 작아 엄두를 내기 어려운 게 현실. 주가지수 선물도 위험성이 크고 기한이 정해져 있어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
하지만 ETF를 이용하면 소액의 자금으로 '한국증시'를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지금은 코스피50과 코스피200 지수와 연동되는 상품만 개설됐지만, 앞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업종대표주 100만원 어치 주세요", "미국 정보기술(IT)주식 50만원어치 주세요"라는 식의 주문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ETF는 장점이 많다. 우선 개별 종목 분석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정보와 지식에서 뒤지는 일반인이 종목 분석을 해가며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지수를 사기 때문에 내부자 거래나 작전 등 불공정 거래에서도 자유롭다. 무엇보다도 지수는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이 그 가치를 보장하는 가장 효율적인 투자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김정래/제일투자증권 투신법인 리서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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