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7일 아무런 원한관계도 없는 여성들을 무자비하게 칼로 찔러 한 명을 죽이고 다른 한 명을 중태에 빠뜨린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범인은 "아내가 생활무능력자라며 이혼을 요구해 여자에 대한 배신감으로 밤에 돌아다니는 여자를 모두 죽여서 복수하려 했다"고 말했다. 더욱 섬뜩한 것은 그가 "모든 여자는 아내와 똑같이 더럽기 때문에 능력이 되는 대로 죽이려 했다"고 말한 것이다. 부인에 대한 배신감과 적개심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무자비하게 살해한 그는 겉으로는 일단 대담하고 잔인무도한 살인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 놓고 보면 그는 틀림없이 겁쟁이다.
우선 살인했다는 점이 그렇다. 상대가 찍소리 못하고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면서 남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또 현실에 맞설 용기가 전혀 없어서 그는 살해대상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택했다.
범행시간이 모두 새벽이었고, 범행대상이 힘없는 여성이라는 점도 그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범인은 스스로 말했듯이 자신이 생활무능력자이기 때문에 이혼당했다. 그는 부인으로부터 버림받기 전에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렇다면 사회에 대한 원한을 먼저 풀었어야 했지만 사회라는 힘센 조직에 맞서지 못하고 대신 힘없는 여자들을, 남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새벽에 해친 것이다. 한마디로 범인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겁쟁이다.
또 그는 세상의 여자들은 모두 악한 존재라는 논리를 세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남성들의 동정과 지지를 유도하는 자기방어 전략을 마련했다. 남을 끌어들여 위안을 얻는 물귀신 작전을 쓰는 겁쟁이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범인처럼 '겁나는 겁쟁이'가 적지 않다. 대담하게 길거리에서 성기를 꺼내 보이는 노출증 환자들. 그들은 남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남성다움을 확인한다. 이들은 대부분 내성적이고 수줍은 성격의 소유자이며, 실제 성관계에서 한번도 만족을 느끼지 못했거나 이성과 마주치면 어색해하는 겁쟁이다.
상향등을 번쩍이고 경적을 울려대며 난폭 운전하는 일부 트럭기사들도 겁나는 존재다. 하지만 이들은 트럭에서 내리는 걸 싫어한다. 땅을 밟는 순간 트럭같이 크게만 느껴지던 자신의 능력이 보잘 것 없게 되기 때문이다. 모두 현실을 피해 숨어 있는 겁쟁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 역시 남 탓하고, 큰소리 치고, 변명하기 급급했던 겁쟁이가 아닌가 더럭 겁이 난다. 그러면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어떨까.
/정찬호 정신과 전문의·마음누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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