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북 지원설을 둘러싼 의혹의 불똥이 급기야 권력 핵심부까지 튀었다.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대 당좌대월이 한광옥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증언했다. 또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이 문화부 장관 당시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원장에게 남북정상회담 성사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대북 비밀지원설이 제기된 지 열흘이 넘었는데도 의혹이 해소되기는 커녕 갈수록 태산이다. 국정마비와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판에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마저 의혹의 배경으로 거론되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펄쩍 뛴다. 엄 전 산은총재가 전언의 진원지로 지목한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그런 일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한광옥씨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모든 법적 조치로 강력 대응할 뜻을 밝혔다.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은 "단 1달러도 준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지 국민들은 또 헷갈린다. 지금 단계에서 어느 쪽 주장이 사실인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누군가 진실을 가리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어떤 형태든 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의혹과 설이 제기되고, 당사자는 이를 부인하는 지루하고도 소모적인 공방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검증이나 사실 확인이 배제된 정치 공방은 무책임하다. 책임을 묻고 규탄하기에 앞서, 제기된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철저히 검증하는 것이 순서다. 청와대가 대북지원설의 진앙지로 떠오르게 된 것은 계좌추적을 한사코 거부해 온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정부는 미적대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오늘이라도 당장 계좌추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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