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이 오랜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취임 초기 돌출언행 등으로 물의를 빚자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는 등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여왔다. 그런 그가 4일 취임 100일(8일)을 앞두고 모처럼 입을 열었다.
―취임 100일을 맞는 소감은.
"사실 100일이 됐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서울시내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며 여론을 수렴하고 문제점을 파악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4년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는 서울시가 경영마인드를 갖춘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으면 한다. 출발은 좋다고 생각한다."
―청계천복원, 강북개발, 교통체계개선 등의 계획은 참신하다는 평가와 함께 우려도 많은데.
"시장이 되기 전부터 시정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큰 그림은 교통 환경 복지 문화 등의 개선을 통해 서울을 명성에 걸맞는 선진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추진하고 있는 계획들은 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부분일 뿐이다. 이들 계획은 서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관심사가 됐다.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청계천복원사업을 찬성하는 시민 대부분은 환경적인 측면에서의 복원을 바라고 있다.
"청계천복원은 분명히 환경적 측면의 접근이다. 그러나 문화, 경제적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만큼 복잡한 문제라는 뜻이다. 세계 어디서도 고가도로가 있는 도시는 발전할 수 없다. 예상되는 어려움으로 교통, 예산, 물 공급, 안전, 주변 상인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절감한다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청계천에 흘릴 물도 하루 5만∼6만 톤 정도인데 지하수 등으로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또 내년 하반기 공사 착공까지 청계고가의 보수는 계속 이뤄지기 때문에 안전에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건설교통부가 강북개발, 구체적으로 미니 신도시형 개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나는 한 번도 '미니 신도시형 개발'이란 용어를 쓴 적이 없다. 그러나 시민들이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용어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서울의 지구단위 계획은 진입로와 학교, 문화시설 건설 등의 비용을 거주자가 물어야 했다.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개발위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어 난개발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지역을 묶어 보다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대신 시가 상당한 부담을 짊어진다는 것이 미니 신도시형 개발의 개념이다. 분명한 것은 강북개발이 강남처럼 아파트만 짓겠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녹지 문화 생활환경을 보강해 강남보다 오히려 살기 좋은 공간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다. 강북개발 외에는 강북지역 주민들의 환경을 개선할 방법이 없다고 확신한다. 수도권 신도시 건설의 경우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서울과 연결하기 위해 지하철과 도로 등을 건설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강북 미니신도시 건설이 훨씬 적은 비용이 든다. 건교부 등 중앙정부는 지자체와 경쟁하는 입장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도와줄 때다. 구체적인 방법과 계획은 이번 달 안에 발표할 계획이다."
―버스노선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개념의 교통체계 개선 방안은 무리한 계획이 아닌가.
"교통체계 개선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적어도 청계천복원 착공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 버스와 지하철 통근이 승용차보다 시간이 더 많이 든다면 누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는가. 간선·지선망을 구축하고 이 노선의 중앙차로를 버스가 다니도록 한다면 통행속도가 40%이상 빨라질 것이다. 승용차 타는 사람을 대중교통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버스노선을 직선으로 펴야만 한다. 간선망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외곽 9곳에 환승주차장과 버스터미널 등을 만들 생각이다."
―서초구 원지동 화장장 건립이 지연되는 등 시장이 지역 주민의 눈치를 너무 본다는 지적이 있다.
"화장장 문제는 현재 소송 중이어서 손을 댈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전임 시장이 공을 들인 사업이란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업은 지역주민과 합의하지 않으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없다. 현재 서초구 주민들과 협상 중이어서 적정한 시점이 되면 공사가 이뤄질 것이라 본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화장장 등 혐오시설은 이제 한 곳에 대규모로 지을 때가 아니다. 현재 화장장 운영은 지자체만 할 수 있는 사업으로 돼있지만 민자사업으로도 가능할 수 있도록 법개정을 정부에 제안할 생각이다. 또 대형병원에도 1,2기 정도의 화장로를 설치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앞으론 민간이 부담하고 지자체는 허가만 해주는 시대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 대사관저 부지의 아파트건립에 대한 시장의 입장이 달라지지 않았나.
"그런 말이 있는데 나는 언제나 초지일관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을 위해 법을 바꿔 허가해줄 수는 없고, 또 미국이라고 적법한데도 불구하고 불허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법을 준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구별 재정격차가 너무 큰 것이 강·남북 불균형의 원인이 아닌가.
"강남구의 예산은 2,908억원이고 금천구는 1,025억원이다. 최고 2.8배까지 재정규모의 격차가 있다. 시는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보조금 및 특별교부금을 자치구별로 차등배분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앞으로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10%를 세원으로 하는 '지방소비세' 신설과 양도소득세를 지방으로 이양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해 자치구간 재정격차를 줄여나가도록 하겠다."
―고건 전 시장은 '복마전'이라는 서울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상당부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직자가 깨끗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기본이다. 공직자가 일생동안 지켜야 할 덕목이다. 나아가 정책의 투명성과 정직성 확립을 위해 노력하겠다. 1년에 7,00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지하철공사는 국민 앞에서 임금을 6% 올렸다고 발표하고 뒷거래로 16%나 인상한 사실이 8월 감사결과 밝혀졌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개인의 깨끗함 위에 시정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시민들이 불안해 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 조직개편 구상은.
"취임해 보니 시청의 조직이 너무 관료적이어서 민선시장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시청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개편이 불가피하다. 우선 유사업무를 합치고 다시 나눠 각 국·실장이 책임을 갖고 경영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임기 중에 2차례 정도 개편할 생각이다."
―28일 발표하는 시정계획은 어떤 내용을 담을 생각인가.
"앞서 언급한 계획들을 중심으로 서울시가 추진할 장단기 사업에 대해 설명할 계획이다. 이 중에는 임기가 끝난 후에도 추진해야 할 장기적인 사업도 포함될 것이다."
/정리=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100일간의 소회
"지난 100일 동안 달라진 점은 시장으로서의 책임감입니다."
시장 취임 후 달라진 게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명박 시장은 주저 없이 이렇게 답했다.
그는 자신이 시장이 됐다는 것을 처음 느낀 게 아들이 히딩크 감독과 사진을 찍어 구설수에 오를 때 였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히딩크 감독과 가족사진을 찍은 것인데 언론과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욕을 먹었다"는 그는 "시민들의 시장에 대한 의식과 잣대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국정감사 때도 느낀 점이 많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국회의원들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고는 "서울시장이 얼마나 책임이 큰 자리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변함 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밤 12시에 잠이 든다고 한다. 놀랄 만큼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고, 열정적으로 '현장'을 방문하는 것도 전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이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능력을 믿는 나머지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시정을 너무 경제성과 효율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000만 서울시민을 책임지는 공직인 시장직에 대한 이해도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취임 후 지금까지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 이 시장이 자타가 공인하는 CEO시장이 될 지 시민들은 눈여겨 보고 있다.
/이성원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