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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도토리 떫은맛은 번식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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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도토리 떫은맛은 번식의 무기

입력
2002.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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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산과일나무들과 가시 가득한 밤송이가 그안에 담긴 씨앗을 어떻게 멀리 보내는지 얘기한 데 이어 오늘은 도토리들의 생존법을 살펴보겠습니다.모든 참나무들의 열매를 도토리라고 합니다. 참나무란 나무는 아주 유명하지만 실제로 이런 나무이름이 식물도감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등등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들을 모두 망라해 그냥 참나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숲의 잎들이 막 변하기 시작하는 이즈음 도토리가 열립니다. 도토리도 밤톨처럼 씨앗 그 자체를 다람쥐 혹은 사람들이 먹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시같은 무기가 없고 기껏해야 귀여운 모자나 쓰고 있는 정도입니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도토리는 바로 떫은 맛이 무기입니다. 우리는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아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람쥐들도 입맛을 아는 이상 떫은 도토리를 좋아할 리 없습니다.

하지만 도토리에는 전분이 많아 귀중한 겨울철 비상양식이 되는 만큼 다람쥐들은 열심히 도토리들을 모아 여기저기 묻어두고 숨겨두는데, 먹을 것이 풍부한 시절에는 구태여 도토리에 손을 대지 않다가 감추어둔 곳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런 도토리들은 어느새 뿌리를 내리고 이듬해 새로운 나무로 자랄 기회를 갖습니다. 무거운 씨앗을 멀리 보낼 방법이 없는 참나무들은 다람쥐의 이동성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그간 우리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좋아하고, 그러한 다람쥐는 도토리의 약탈자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숲 속의 식구들은 이렇게 서로 얽히어 잘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문제는 그 떫은 맛마저 물에 우려 먹는 사람들이지요. 사람이 다람쥐보다 더 막강한 도토리의 약탈자가 되어 온 나라의 산을 뒤지는 계절이 바로 요즘입니다. 며칠 전엔 도토리를 주우러 입산금지된 산에 몰래 올랐다가 길을 잃고 헤맨다는 연락에 한밤중 온 산림공무원과 119구조대까지 출동하는 현장을 구경한 일도 있습니다.

좀 너무들 한다 싶으시죠? 산길에 구르는 도토리를 밟다가 넘어질 뻔한 체험은 아주 깊은 산이 아니고는 하기 어렵습니다. 그 도토리들 가운데는 숲의 새 주인이 될 어린 나무로 커나갈 것들도, 다람쥐의 비상식량이 될 것들도 있을 터인데 걱정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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